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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Sep 26. 2023

비밀금고 속에 잠든 아버지의 금반지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아버지' 하면 내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는 금반지 낀 투박한 손이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버지 손엔 늘 두툼한 금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그 손으로 한번씩 쓰담쓰담 내 머리를 쓰다듬곤 하셨었다. 그때마다 어린 나와는 다른 단단하고 두툼한 어른스런 손바닥 질감에 더해 딱딱한 쇠붙이성 물질이 내 머리에 와닿던 느낌이 선명하다.



한번은 아버지가 큰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다.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때 아버지는 뭔가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셨던 모양이다. 뜬금없이 늘 손에 끼우고 다니던 금반지를 빼시더니만 다짜고짜 막내며느리인 내 아내에게 건네셨다.



아들인 내게 주라고 아내가 권했지만, 아버지는 극구 "이건 우리 며느리 줘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이에 아내는 "이건 남자 반지라 저는 끼우지도 못해요" 하고 한번 더 사양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잘 뒀다 요긴할 때 팔아 쓰거라" 하고 당부하며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아내는 "곧 퇴원하실 건데 늘 끼우시던 반지 저 주고 나면 손가락이 허전해서 안 돼요" 하고 한번 더 사양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며 "또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무려 한 냥이나 되는 금반지를 여러 개 갖고 계시다고 했다.



평소 꾸미는 일엔 통 관심이 없는 아버지임을 잘 알기에 궁금해진 나는 "웬 반지가 그렇게 많아요?" 하고 여쭤봤다. 요일 별로 다른 반지를 끼울 정도의 패셔니스트도 아닌 아버지가 고만고만한 금반지들을 여러 개 갖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서다. 그러자 아버지는 "혹시 또 전쟁이 나면 금붙이가 최고니까 여유 있을 때 하나씩 챙겨둔 거지"라고 답하셨다.



그랬다. 6.25 참전용사인 아버지는 아직도 그때 그 전쟁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셨던 거였다. 6.25전쟁이 끝난지 벌써 70여 년이 지났지만, 아버지 마음 속엔 여전히 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혈혈단신 홀몸이나 다름없던 그 때완 달리 챙겨야 할 자식들까지 딸린 몸이라 더 두려우셨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없는 살림 속에서나마 조금 여유가 생길 때마다 금붙이를 하나씩 챙겨두셨던 거였다. 전쟁이 됐건 뭐가 됐건 다시 한번 극한상황에 내몰리더라도 식구들 밥이라도 챙겨먹일 요량으로... 아마 병상에 누워 며느리에게 소중히 간직해 온 금반지 하나를 건넨 속마음엔 그런 어려운 상황이 또 닥치면 어쩌나 싶은 자식사랑이 깃들어 있었을 거다.



예의 금반지는 지금 우리집 비밀금고(?) 속에서 아버지의 큰 사랑을 간직한 채 깊은 잠을 자고 있다. 가능하면 그 깊은 잠에서 깨지 않은 채 아버지의 금반지가 우리 딸들에게, 그 딸들의 아들 혹은 딸들에게 계속 전해지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아버지가 우리 가족에게 남겨준 그 큰 사랑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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