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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May 21. 2023

실상사 철조여래좌불은 동네 한의사 형님같다


<라떼>는 국보 1호 남대문, 보물 1호 동대문이라 배웠었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왜 남대문은 국보 1호고, 동대문은 보물 1호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학교에서 선생님이 "시험문제에 나올 수 있으니까 외웟!" 하고 외쳐서 달달 외웠을 뿐이다.​


국보와 보물의 차이는 그로부터 훨씬 뒤에야 알게 됐다. 일제시대엔 남대문이 보물 1호였고, 동대문은 보물 2호였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일본 베이비들이 자국의 유물들엔 국보라는 호칭을, 식민 지배 하에 있는 우리나라 유물들엔 보물이란 호칭을 부여한 결과였다.


일제의 마수로부터 벗어나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으로 우뚝 선 뒤 보물 1호였던 남대문은 국보 1호로 승격됐고, 보물 2호였던 동대문은 보물 1호로 승격됐다. 나머지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들도 그 역사적 가치와 희소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각각 국보와 보물로 지정됐다.


2021년 대한민국 정부는 국보와 보물들에 붙어있던 제 몇 호 몇 호 하는 명칭들을 공식 폐기했다. 제 1호니 제 2호니 하는 명칭이 국보와 보물들에 잘못된 차별 인식을 줄 우려가 있다는 관계 전문가들의 건의를 받아들여서였다.


이 같은 사실들은 과거 보물 제41호로 불리우던 전북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불>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알게 된 내용이다. 보다 정확히는 내 눈엔 국보가 되고도 남을 무게를 지녀보이는 이 철조여래좌불이 왜 고작 보물이냐는 불만 때문에 알아본 거였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건 국보와 보물이란 건 사실 종이 한 장 정도 차이 밖엔 없다는 거였다. 철로 제작된 불상이 그거 하나 밖에 없었다면 국보가 되고도 남았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보물로 지정됐다 봐도 무방하다고나 할까. 그러니 실상사 철조여래좌불이 국보가 아닌 보물로 지정돼 있다 해서 불만을 갖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실상사 철조여래좌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 불상이 국보가 아닌 보물로 남은 걸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았으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관 속에 갇힌 모습 밖엔 볼 수 없었을 거여서다. 그러니 지금처럼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볼 수 있다는 건 참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나는 절집 구경가는 걸 좋아한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한 분위기와 영혼을 두들기는 목탁소리, 마음의 때를 살금 문질러 빼주는 독경 소리가 좋아서다. 하지만 그동안은 불상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 실상사 철조여래좌불을 알게 되면서 관심이 좀 생겼다.


실상사 철조여래좌불에게서 느껴지는 서민적인 매력 덕분이다. 대다수 불상들은 매끄럽게 금칠을 해 귀티가 좔좔 흐르는 반면, 실상사 철조여래좌불은 쇠 재질 특유의 거무튀튀한 색깔에 거칠거칠한 질감마저 느껴져 서민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거기다 그 얼굴 표정은 대다수 불상들에서 보여지는 천편일률적인 대자대비 미소와는 달리 미욱한 중생들의 현실적 아픔을 함께 아파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어쩌면 실상사 철조여래좌불이 약사전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됐든 그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보노라면 왠지 내 마음이 어루만져지는 느낌이 들고, 신이라기보단 그가 내 속을 속속들이 잘 아는 동네 친한 한의사 형님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곤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누군가 전북 남원 실상사에 갈 일이 있다면 그래서 다른 건 대충 보더라도 꼭 약사전에 들러 철조여래좌불과 마주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라 권하고 싶다. 천년 세월을 뛰어넘으면 미물인 여우도 사람이 된다는데, 하물며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을 즈려밟은 채 부처님 형상으로 자그만치 천년 넘는 세월을 살아온 철조여래좌불이라면 적어도 마음 연 사람들한텐 이심전심 뭔가 전해주는 말씀 한 자락쯤은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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