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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n 02. 2023

까불지 말자!


출근길, 앞서가던 대형버스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시속 80km 가까운 빠른 속도로 달리던 중이었다. 놀란 나 역시 곧바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내 꽁무니에 바짝 붙어오던 뒷차도 혼비백산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게 '머선 일이고?' 싶었다.​

해당 구간은 내가 20년 넘게 매일 지나던 길이었다. 덕분에 몇 미터 앞에 신호등과 과속단속 카메라가 있고, 그 앞엔 또 좌회전 차로와 우회전 차로가 나온다는 것까지 훤히 꿰는 길이었다. 뿐만 아니라 항상 같은 시간대에 지나기 때문에 도로 흐름 패턴까지도 머릿 속에 환히 그려지는 길이었다.


그 모든 걸 종합해 봤을 때 그렇게 급작스레 급브레이크를 밟을 일은 없다는 얘기다. 특히나 차고가 높아 운전석에 앉으면 승용차보다 몇 배는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대형버스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다면 예상 가능한 추론은 대형버스 바로 앞에서 뭔가 돌발적인 사고가 터졌을 거라는 정도였다.


결과는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잠시 후 대형버스가 오른쪽 깜박이를 켜며 차선 변경하는 걸 보고 뒤따라 가다 보니 그 앞쪽에 승용차 두대가 뒷범퍼와 앞범퍼를 맞댄채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앞쪽으로 차 한 대 간격 정도 떨어져 승용차 한 대가 더 서 있었고, 그 앞엔 로드킬 당한 개 한 마리가 죽은 듯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그걸 보자 대충 상황이 머릿 속에 그려졌다. 아마도 제일 앞에 서있는 승용차 앞으로 중앙분리대 아래 쪽에서 튀어나온 개 한 마리가 갑작스레 뛰어 들었을 거고, 미처 피하지 못해 그를 들이받은 운전자는 육중한 충격음에 반사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거였다. 그 뒤를 따르던 차도 같이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거고, 그 차 꽁무니에 바짝 붙어 달리던 다음 차는 미처 피하지 못해 앞차 뒷꽁무니를 그대로 들이받았을 거다.


이 와중에 불행 중 다행이라면 대형버스가 정말 고맙게도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제동거리가 상대적으로 긴 대형버스 특성상 추돌사고를 낸 차와 그 앞차, 어쩌면 로드킬 사고를 낸 그 앞차까지도 인명이 왔다갔다 하는 대형사고에 휘말렸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형버스 사고를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 파괴력은 승용차 사고와는 아예 <급>을 달리한다.​


불행 중 다행인 상황이었다곤 해도 아침 출근길에 예기치 못한 큰 사고를 당한 운전자들을 보는 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씁쓸한 기분으로 남은 출근길을 재촉해야만 했다. 그 순간 운전 시 안전거리 확보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 건 사람 앞일이란 게 정말 예측불허라는 운명론적인 쓸쓸함이었다.


시속 80km로 씽씽 달리는 차 앞으로 개가 뛰어드는 걸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개 한 마리로 인해 줄줄이 추돌사고가 벌어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또 그 뒤를 따르던 대형버스가 정말 감사하게도 안전거리를 확보해 준 덕분에 여러 사람이 생명을 보존하게 될 줄은 또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저런 상념 끝에 든 생각은 로드킬 당해 죽은 개나 우리 인간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거였다. 저 죽을 줄 모른채 씽씽 달리는 차들 사이로 뛰어든 개 한 마리나, 우주 한 가운데 내던져진 채 죽을둥 살둥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우리 인간이나 오십보백보요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간들은 하루살이를 보며 그 짧은 생을 비웃곤 하지만, 인간 역시 더 거대한 어떤 존재의 관점에서 내려다 보면 하루살이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그러니 저 잘 났다고 누구한테 함부로 상처 같은 거 주지 말고, 아주아주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인간이란 육피를 뒤집어 쓴 이상 어차피 언젠간 죽을 운명이긴 하지만, 잘못하면 까불다가 꼴 사납게 죽는 수도 있다. 죽어도 곱게 죽어야지, 까불다 죽으면 공연히 꼴만 더 우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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