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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May 18. 2023

장비탓 좀 하지 말자


사진 좀 찍는다는 이들과 마주하다 보면 카메라 자랑에 열 올리는 베이비들을 드물잖게 만나곤 한다. 내 카메라는 바디가 얼마짜리고, 렌즈는 하나에 기백만원쯤 가며, 내 카메라백에 든 장비를 다 합하면 외제차 한 대 값이 나온다나 뭐 그런 식이다.

심지어 무슨 동호회니 클럽이니에 가입해 단체로 몰려다니면서 하라는 사진은 안 찍고 장비 비교에만 열중하는 베이비들도 많다. 무슨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가 고민이 아니라 누구는 이번에 카메라 바디를 신상으로 교체했는데 1대1 바디에 1억 화소여서 대충 찍어도 사진이 죽여주더라 뭐 그런 식이다.


안타까운 건 그런 사람들 치고 사진 잘 찍는 베이비는 별로 못 봤다는 거다. 그래놓고는 자신의 사진이 남들보다 안 좋은 이유는 순전히 장비가 후져서라는 비겁한 변명 뒤에 숨기 일쑤다. 죽여주는 신상 바디에 비싼 렌즈만 손에 쥐어진다면 유명 작가님들 못잖은 걸작을 자기도 얼마든지 찍을 수 있다 뭐 그런 식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진의 주체는 카메라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데서 나온 우매한 베이비들의 헛소리일 뿐이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도 내 보기엔 헛소리지만, 붓이 안 좋아 글 못 쓴단 말 역시 헛소리에 불과하다. 명필은 붓이 안 좋아도 좋은 붓 쓰는 베이비들보단 훨씬 글을 잘 쓴다 뭐 그런 얘기다.


제작비를 많이 들인다 해서 명화가 나오는 건 아니다. 사람들 눈길을 잡아끄는 상업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는 가능하겠지만, 퀄리티 측면에선 오히려 저예산 독립영화보다 못한 블록버스터들이 비일비재하다.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 값비싼 신상 바디에 죽여주는 렌즈를 장착한다고 해서 좋은 사진이 저절로 찍혀지는 건 아니다 뭐 그런 얘기다.


무엇을, 어떻게, 왜 찍겠다는 나만의 시각이 우선이다. 그저 다른 베이비들이 많이, 즐겨 찍는다고 우르르 몰려가선 똑같은 구도로 앞서간 자 흉내나 내는 건 시간과 재능을 낭비하는 짓이다. 똑같은 걸 찍으면서 선명도니 화질이니 하는 따위나 비교질을 해대니 카메라 장비 탓이나 하고 있는 거다. 사진은 카메라가 아니라 사람이 찍는 거다 뭐 그런 얘기다.


세상엔 핸드폰 카메라 하나 들고도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란 뜻이란다)급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님도 계시고, 비싸기론 세계 최고라는 라이땡 카메라를 들고도 몇 년 가야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못 찍는 베이비들도 있다. 카메라 장비 탓 할 시간 있으면 무슨 사진을 어떻게, 왜 찍을 건가를 고민하고, 없는 틈을 쪼개서라도 신발 밑창이 닳도록 열심히 돌아다녀라 뭐 그런 얘기다.


#카메라장비병 #잘되면내덕분안되면남탓 #장비탓 #사진은사람이찍는거 #사진은카메라가찍는게아니다 #쓸데없는장비자랑 #글짓는사진장이 #사람이있는풍경 #후지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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