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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n 13. 2023

두 판 주문한 피자가 한 판만 왔다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주말 저녁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먹으려고 피자 두 판을 주문했는데, 달랑 상자 하나만 배달돼 왔다. '설마 두 판을 빈대떡 쌓듯 한 상자에 담은 건가?' 생각하며 열어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 순간 아내는 "동작 그만! 빨랑 상자 다시 덮엇. 혹시 모르니까 얼른 증거부터 보전해야 햇!" 하고 외쳤다. 피자 상자를 열고 닫는게 증거 보전과 뭔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갱년기를 겪으면서 부쩍 다혈질이 된 아내는 피자 상자 덮으라는 말에 굼뜬 반응을 보이는 나를 바라보며 대뜸 열부터 냈다. "주말 맞아 모처럼 가족들이 피자 파티 좀 할랬더니 이 사람들 이거 도대체 뭐하는 짓이얏? 설마 자기들은 분명 두 판 보냈다구 우기는 건 아니겠죠? 증거 보전해야 하니까 아 얼릉 상자 덮으라굿!"하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피자 상자 덮는 게 증거 보전과 뭔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아내 말처럼 정말 두 판 보냈다고 우기면 어떡하지?' 하는 소시민적인 걱정을 하며 피자집으로 전화를 했다. 상황이 여차저차한데 어떻게 된 거냐 물으니 피자집 사장님은 "두 판이라구요? 저는 한 판인줄 알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바로 다시 보내겠습니닷!" 하고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며 사과했다. 배달 어플을 이용해 같은 종류 피자를 두 판 시켰더니 메뉴 이름만 확인한 뒤 그 옆에 쓰인 2라는 숫자는 간과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전화를 끊는데, 갑자기 곁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봐 오던 큰딸이 급발진을 해왔다. "엄마 아빳! 사람이 말이야 살다 보면 실수도 하고 그럴 수 있는 거지, 그런 거 갖고 화내면 되요~오, 안 되욧? 실수 한 번 한 거 갖고 너무 뭐라고 그러지 맙시닷!!!" 하고 말이다(화는 아내가 냈고, 나는 피자집 사장님한테 목소리 한 번 안 높였는데 뭔가 억울하다).


평소 큰딸은 착한 성품이긴 해도 그렇게까지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넘치는 성격은 아닌데 뜻밖의 반응이었다. 이에 나는 '야가 갑자기 왜 이러지?' 싶어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 오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십중팔구 본인이 최근 그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 경험이 있는 걸 거였다.


그래서 나는 회심의 미소를 띠며 "뼝아리 공무원 우리 딸, 너 민원인이 서류 두 통 신청했는데 한 통만 발급해 준 적 있지?" 하고 물었다. 그러자 큰딸은 정곡을 찔렸다는 표정으로 "어... 어떻게 아셨어요?" 하고 말까지 더듬었다. 그 표정으로 미루어 보건대 아마 상대방이 아빠만 아니었으면 "이런 귀신같은 베이비"라는 한 마디를 덧붙였을지도 모르겠다.


이어 큰딸은 "그 분이 화낼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너그럽게 넘어가 주셨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런 실수 한두 번쯤 할 수도 있는 거지 하면서요. 피자집 사장님도 뭐 고의로 그런 건 아닐테니까 쫌 너그럽게 용서해 주자구욧!" 하고 덧붙였다. 서류 두 통 신청했던 민원인의 너그러운 이해가 제딴엔 퍽이나 고마웠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한 사람의 너그러움은 이런 식으로 세상에 전파가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뼝아리 공무원인 큰딸에게 베풀어진 누군가의 너그러움은 피자집 사장님에게로 향하고, 피자집 사장님에게 우리가 베푼 너그러움은 그 집 직원이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 향하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세상은 돌고 도는 거였다.


그러니 오늘 누군가 내게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너무 화내진 말도록 하자는 얘기 되시겠다. 그 한 번의 너그러움이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고마움으로 기억될 거고, 그 고마움을 갚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또 너그러움을 나누다 보면 결국 언젠가는 나, 혹은 내 가족이나 주변 누군가에게도 되돌아오는 날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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