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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n 27. 2023

부지런하고 성실, 인사성까지 바른 아랫층 베이비

베란다에서 아랫층으로 소변테러 가한다는 베이비보단 나은건가?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인터넷 기사를 보던 중 <베란다 서서 소변 테러, 유리창에 눌러붙어 악취 진동>이란 제목의 기사를 봤다. 어느 아파트인가 윗층 사는 미친 베이비 하나가 베란다에서 창밖으로 오줌을 싸서 아랫층 주민이 고통을 받고 있단 내용이었다. 그 오줌이 창문에 눌어붙어 지독한 악취를 풍기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이 뉴스를 접하며 나는 우리집 아랫층 베이비를 문득 떠올렸다. 매일 아침 5시45분만 되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베란다에 나가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림으로써 곤하게 잠들어 있던 우리 식구들에게 별로 반갑지 않은 아침인사를 꼬박꼬박 건네오는 아주 <부지런하고 성실한 데다가 인사성까지 바른> 베이비다.​


​이 때문에 아내는 매일 아침 5시4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비몽사몽 간에 벌떡 일어나서는 몽유병 환자처럼 안방 문을 나서곤 한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휘청거리며 걷는 모습이 마치 유령 같기도 하다. 다행히 해가 일찍 떠 날이 훤했기 망정이지 컴컴했으면 좀 무서웠겠단 생각조차 든다.


그렇게 일어나 아내가 향하는 곳은 거실 베란다다. 보다 정확히는 무더위 때문에 활짝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이다. 마치 뭐에 쫓기듯 서둘러 베란다 창문 손잡이를 붙잡은 뒤 그 어떤 것에도 틈입할 새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굳게 닫아 건다. 그리고는 다시 몽유병 환자처럼 휘청거리며 안방으로 돌아와 기절하듯 잠들곤 한다.


아내에게 이 같은 몽유병 아닌 몽유병이 생긴 이유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데다가 인사성까지 바른> 아랫층 베이비 때문이다. 처음엔 안방 화장실에서 아침마다 담배를 피워 대 이웃들을 괴롭히더니만, 그 집 안방 마님으로부터 호되게 혼쭐이 났는지 어쨌는지 어느날부턴가 거실 베란다 쪽으로 흡연 장소를 옮겨버린 까닭이다.


​아마 거기 베란다에서 제 집 안으로 통하는 중간 문은 꼭꼭 닫아건 채 제 마누라 눈치를 흘끔흘끔 살피며 궁상 맞은 몰골로 담배를 피우고 앉았지 싶다. 문제는 담배 연기라면 길거리를 지나다가 잠시 스치는 것조차 질색하는 게 우리 아내인지라 아침마다 아랫층으로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담배 냄새는 아내 꼭지를 돌아버리게 만들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러다 말겠지 참기도 해보고,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싶을 땐 한 번씩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주의를 당부하는 방송도 해봤다. 또 엘리베이터 내 게시판에 "담배 연기 때문에 고통 받는 이웃이 있으니 아파트 실내 흡연을 제발 쫌 삼가해 달라"고 점잖게 당부하는 글도 붙여봤다. ​​


하지만 아랫층 베이비는 우이독경에 안하무인인데다가 막무가내였다. 뿐만 아니라 부지런하고 성실하기까지 해서 평일은 아침 5시45분, 주말은 아침 7시에 정확하게 거실 베란다로 출근해서는 담배 연기를 풀풀 날려 보냈다. 마치 이웃주민들에게 안녕히 잘 주무셨냐고 아침 인사라도 건네듯이 말이다.


곤하게 아침잠을 자다가 몇 번이나 기습적인 아침 인사를 건네받은 아내는 그때마다 경기라도 일으키듯 소스라치게 놀라 창문을 닫으러 달려갔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아예 5시40분에 알람까지 맞춰놓은 뒤 몽유병 환자 같은 모습으로 거실 베란다 창문을 닫으러 출동하고 있다.​​


베란다에서 창밖으로 오줌을 싸 갈겨댄다는 미친 베이비 뉴스를 접하며 내가 우리 아랫층 베이비를 떠올린 건 두 베이비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윗층 베이비는 아랫층을 향해 오줌을 싸 갈기고, 아랫층 베이비는 윗층을 향해 담배 연기를 싸 갈기는 정도 차이는 있지만, 공동주택에 살면서 다른 사람 생각 따윈 전혀 안 한채 <개민폐>를 끼친다는 면에선 똑같은 족속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이 이 두 베이비를 아래 윗층에 같이 살게 하면 어떨까 하는 거였다. 오십보 백보 하는 짓이 똑 닮은 게 정말 좋은 이웃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아랫층 베이비가 담배를 피워 연기를 윗층으로 올려보내면 윗층 베이비는 오줌을 싸서 화답을 하며 티키타카 어우러져 사는 거다. 그러다 보면 서로 감정의 상승효과를 일으켜 나중엔 멱살 잡고 같이 칼춤이라도 추게 되지 않을까?


이게 뭔 변태 같은 생각인가 싶지만, 가끔은 그런 베이비들만 따로 모여사는 공간을 하나 만들어주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곤 한다. 다수의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들 한 가운데다 그런 미친 베이비를 하나씩 풀어놓을 게 아니라 그런 베이비들만의 세상을 하나 따로 만들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거다. 그 안에서 저희들끼리 얼굴에 오줌을 싸 갈기건 담배 연기를 싸 지르건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되는 세상을 더불어 함께 살게 해주면, 평범하고 상식적인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바깥에서 한결 평안하게 한 세상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도 답답하고 대책 안 서는 도그 베이비들이라서 전혀 현실적이지도 않고 말도 안 되는 도그 껌 씹는 헛소리 한 번 지껄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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