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후유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켜 드리기 위해 관련 서류를 작성하던 중이었다. 담당 간호사가 불쑥 이렇게 어머니 키를 물어왔다. 오십 몇 년 간 살아오는 동안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궁금해 해본 적조차 없는 물음이었다.
순간 나는 많이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자식된 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만 하는 아주 기초적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딱 들킨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한테 <키>라는 게 존재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왔기에 그런 질문은 많이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왠지 얼굴이 벌개지는 느낌으로 잠시 머뭇거리고 서있자니 담당 간호사는 이내 어머니와 나를 이끌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키와 몸무게를 한 번에 잴 수 있는 자동측정장비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우리 어머니 키가 148cm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 마디로 놀라웠다. 키가 작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 키가 150cm도 안 된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돼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땐 늘 올려다 봐야만 하는 키 큰 어른이었고, 내 키가 훌쩍 큰 뒤에도 여전히 실제 키보단 훨씬 크게 느껴지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50년 넘는 긴 세월동안 모자 관계로 살아왔지만, 그 순간 문득 어머니가 좀 낯설게 느껴졌다. 멀리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핑계로 1년에 몇 번 정도 건성으로 왔다갔다 하다 보니 제대로 살필 기회가 없었는데, 키 문제를 계기로 찬찬히 어머니 얼굴을 살펴보니 그새 참 많이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6년 전 아버지가 췌장암과 투병할 때 병 수발하느라 많이 고생하신 뒤 특히 더 늙으신 거 같았다. 그 뒤 몇 년 간은 비교적 건강하게 잘 버티는 느낌이었는데, 최근 코로나에 감염돼 한 차례 타격을 입은 뒤 다시 폐렴 후유증까지 앓으면서 더더욱 늙으신 느낌이었다.
어느덧 구순 가까운 연세라 가뜩이나 여기저기 편치 않으신 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기다 코로나 후유증까지 더해지면서 어머니는 여기저기 몸이 더 아파졌다. 그 여파로 "얼른 죽어야 편해지지!" 하는 한탄조 넋두리를 늘어놓곤 하는데, 울컥 화가 날 정도로 갑자기 확 늙으신 느낌이었다. '아, 씨이~×!' 하는 급발진성 쌍욕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50대에 접어들면서 나는 나 늙는 것만 알았지, 우리 어머니가 저렇게 갑자기 늙어 버리신 건 미처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자식놈들 키워봐야 다 지들 밖에 모른다 하더니만 내 꼴이 딱 그랬다. 그러다가 갑자기, 느닷없이 마주친 어머니의 깊어진 주름을 보며, 병고에 시달리느라 하루하루 더 시들어가는 어머니를 보노라니 한동안 끊고 살았던 쌍욕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다시 치밀어 오른다. 아, 씨발라 먹을 놈의 자식놈들, 씨 발라 쳐먹을 놈의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