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잡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사진장이 Jul 05. 2023

"어머니 키가 몇이세요?"

나를 당황하고 부끄럽게 만든 간호사의 질문



"어머니 키가 몇이세요?"

코로나 후유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켜 드리기 위해 관련 서류를 작성하던 중이었다. 담당 간호사가 불쑥 이렇게 어머니 키를 물어왔다. 오십 몇 년 간 살아오는 동안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궁금해 해본 적조차 없는 물음이었다.


순간 나는 많이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자식된 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만 하는 아주 기초적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딱 들킨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한테 <키>라는 게 존재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왔기에 그런 질문은 많이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왠지 얼굴이 벌개지는 느낌으로 잠시 머뭇거리고 서있자니 담당 간호사는 이내 어머니와 나를 이끌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키와 몸무게를 한 번에 잴 수 있는 자동측정장비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우리 어머니 키가 148cm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 마디로 놀라웠다. 키가 작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 키가 150cm도 안 된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돼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땐 늘 올려다 봐야만 하는 키 큰 어른이었고, 내 키가 훌쩍 큰 뒤에도 여전히 실제 키보단 훨씬 크게 느껴지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50년 넘는 긴 세월동안 모자 관계로 살아왔지만, 그 순간 문득 어머니가 좀 낯설게 느껴졌다. 멀리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핑계로 1년에 몇 번 정도 건성으로 왔다갔다 하다 보니 제대로 살필 기회가 없었는데, 키 문제를 계기로 찬찬히 어머니 얼굴을 살펴보니 그새 참 많이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6년 전 아버지가 췌장암과 투병할 때 병 수발하느라 많이 고생하신 뒤 특히 더 늙으신 거 같았다. 그 뒤 몇 년 간은 비교적 건강하게 잘 버티는 느낌이었는데, 최근 코로나에 감염돼 한 차례 타격을 입은 뒤 다시 폐렴 후유증까지 앓으면서 더더욱 늙으신 느낌이었다.


어느덧 구순 가까운 연세라 가뜩이나 여기저기 편치 않으신 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기다 코로나 후유증까지 더해지면서 어머니는 여기저기 몸이 더 아파졌다. 그 여파로 "얼른 죽어야 편해지지!" 하는 한탄조 넋두리를 늘어놓곤 하는데, 울컥 화가 날 정도로 갑자기 확 늙으신 느낌이었다. '아, 씨이~×!' 하는 급발진성 쌍욕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50대에 접어들면서 나는 나 늙는 것만 알았지, 우리 어머니가 저렇게 갑자기 늙어 버리신 건 미처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자식놈들 키워봐야 다 지들 밖에 모른다 하더니만 내 꼴이 딱 그랬다. 그러다가 갑자기, 느닷없이 마주친 어머니의 깊어진 주름을 보며, 병고에 시달리느라 하루하루 더 시들어가는 어머니를 보노라니 한동안 끊고 살았던 쌍욕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다시 치밀어 오른다. 아, 씨발라 먹을 놈의 자식놈들, 씨 발라 쳐먹을 놈의 세월이다.


#어머니의키 #쪼그라드는어른들키 #작은거인어머니 #당황스런질문 #코로나후유증폐렴 #글짓는사진장이 #사람이있는풍경

매거진의 이전글 부영 회장님의 1억원 나눔이 껄쩍지근한 까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