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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Sep 22. 2023

층간흡연 한방에 잠재운 아내의 비밀무기

이미지출처 : 인터넷게시판


우리 아파트 아랫층에는 아주 매우 많이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인사성까지 바른 '흡연충' 베이비가 하나 산다.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 하나로 벌레 취급까지 하는 건 결코 옳지 않다 생각하지만, 예의 아랫층 베이비에 한해서만큼은 반드시 '흡연충'이라는 단어를 꼭 쓰고 싶다. 한마디로 해도해도 너무한 베이비여서다.


안방 화장실, 거실 베란다 등을 옮겨다니며 새벽이고 한밤중이고 시도 때도 없이 담배연기를 올려보내 이웃들에게 전혀 반갑지 않은 문안인사를 꼬박꼬박 여쭙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집을 비롯한 여러 가구에서 이 문제로 지난 몇 년간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해 족히 수십 차례는 자제를 촉구하는 안내방송을 해봤지만, 그는 마이동풍 요지부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횟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밤 12시에서 새벽 사이는 잠잠하던 패턴도 새벽 2시고 3시고 가리지 않는 등 갈수록 안하무인이었다. 참다 못한 아내는 잠자다가 기습적으로 담배 연기 공습을 받을 때마다 발작적으로 뛰쳐나가 부러 쾅 소리가 나게 창문을 닫기도 하고, 때론 육두문자에 가까운 소심한 샤우팅도 내질러 봤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위로 올라가 퍼지는 담배연기 속성을 감안할 때 아랫층인 건 확실했지만, 그 아랫층이 어디인지를 특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의 베이비를 더 기고만장하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어느 층의 몇호인지만 알아도 인터폰을 하든 지나다 마주치면 한 마디 하든 할텐데, 아랫층인지 그 아랫층인지, 혹은 그 아랫층의 오른쪽 혹은 왼쪽 옆집인지를 특정할 방법이 없다 보니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남편, 내가 마침내 그 흡연충 베이비를 무찔러 버렸어요!" 하고 기쁜 표정으로 외쳤다. 평소 문제의 베이비 때문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아 씩씩대고 있던 터라 출근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나는 궁금해져서 "어떻게? 그동안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씨알도 안 먹혔잖아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씩 웃으며 "어제 콘서트 다녀온 티켓값 좀 했지요 ㅎㅎ" 하고 말했다. 뭔 소린가 싶어 다음 말을 재촉하자 아내는 "어제 왜 콘서트 공연 도중에 가수가 휴대폰 불빛 켜서 무대 비춰주면 공연하는 사람은 기분이가 업된다고 했잖아요. 문득 그게 생각이 나서 휴대폰 불빛을 켜서 아랫층 베란다를 한번 쓱 비춰줬더니 담배 피던 놈이 잽싸게 도망가버리더라구요"라고 답했다.


나는 속으로 '아핫!' 싶었다. 심리학에 이런 용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이름하자면 '서치라이트 효과'쯤 되지 않을까 싶다. 수십 차례나 아파트 안내방송이 나왔을 정도로 공분을 사고 있긴 했지만 그 범인이 누군지 특정할 수 없어 문제의 흡연충 베이비는 어둠 속에 숨은 채 굳세게 담배를 피워왔던 건데, 그 어둠에 서치라이트를 비춰주자 위험을 느끼고 도망쳐 버린 거 아닌가 싶었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부연설명을 좀 하자면, 어둠 속에서 서치라이트를 비출 경우 하얀 연기는 매우 두드러지게 잘 드러난다. 다년간 풍경 사진을 찍으러 다녀본 사진가로서의 내 경험에 비춰보면 하얀 안개는 햇볕 같은 강력한 빛을 만나는 순간 산이나 나무 같은 주변 풍경들과 명암 대비가 두드러지면서 확연히 그 존재가 드러나는데, 그건 하얀 담배연기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서치라이트를 비추는 순간 그 발원지가 즉각적으로, 극명하게 나타난다는 얘기 되시겠다.


예기치 못한 서치라이트 출현에 크게 놀란 건지 다른 이유 때문인진 몰라도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문제의 흡연충 베이비는 한밤중 베란다 흡연을 삼가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고무된 아내는 백미터 밖까지 불빛이 비춘다는 초강력 손전등 비밀무기까지 새로 구비해놓고 또 한번 맞붙을 결전의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과연 이번엔 문제의 그 아주 매우 많이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인사성까지 바른 베이비 정체가 밝혀질지 기대가 된다. 쫄깃쫄깃 개봉박두, 커밍 쑨~이다.


#층간흡연 #아파트흡연 #흡연충 #서치라이트 #글짓는사진장이 #사람이있는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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