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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Sep 27. 2023

날개 없는 천사를 보았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소화도 시킬겸 운동을 겸해

동네 한바퀴를 돌러 나선 길이었다.



저 멀리 앞쪽에서

뭔가 시신경을 자극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유모차 위에 폐지를 잔뜩 실은채

힘겹게 걷는 할머니 한 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노쇠한 개미처럼

길을 못 찾아 역주행로로 들어섰고,

자기 몸무게의 몇 배를 짊어진 탓에

할머니는 중심을 잘 못잡고

비틀거리셨다.



그 결과 폐지 유모차는

자꾸만 차들과 정면으로 마주쳤고,

직진 차와 우회전하는 차들이

서로 엉키는 지점이라

그렇잖아도 혼잡하던 도로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돼버렸다.

할머니도,

엉킨 차들도

서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천사 하나가

할머니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할머니와 폐지 유모차를

함께 보살피며 길을 열기 시작했다.

뒤엉켜 난장판을 벌이던 차들은

천사의 앞길에 행여 걸림돌이 될새라

하나둘 조심스레 비켜섰다.



천사는 그렇게

차들 사이를 유유히 가로질러

할머니와 폐지 유모차를 길 건너까지

안전하게 잘 모셔다 드렸다.

덕분에 도로 위는

이내 평화를 되찾았다.



그 모습이 아주 매우 많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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