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잡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사진장이 Oct 13. 2023

적반하장 큰소리 친 택시기사의 최후



"아, 차가 오면 빨리 피할 것이지 왜 어물쩡거려서 사고를 유발햇?"

가해자인 주제에 택시기사는 어이없게도 피해 학생에게 대뜸 성질부터 부렸다. 그 태도가 얼마나 당당했던지 아마 사정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피해 학생이 달리는 택시 앞으로 뛰어들기라도 한 걸로 착각할 지경이었단다. 얼마전 큰딸이 밤 늦게 택시를 타고 집에 오던 길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피해 학생은 어이가 없었는지 잠시 멍해 있었다. 가벼운 접촉사고긴 했지만 그래도 사고는 사고인지라 놀라서 잠시 정신줄을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던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이같은 상황이 택시기사에겐 뭔가 근거없는 자신감을 심어줬던 모양이다. 밤 늦은 시간이라 붉은색 점멸 신호가 켜진 상황이었다고는 해도 교통사고 중 무려 12대 중과실 중 하나로 꼽히는 횡단보도 보행자 사고를 내고서도 기고만장해 계속 큰소리를 친걸 보면 확실히 그랬다.



어쩌면 택시기사는 '라때'로 착각해 일단 큰소리부터 지르고 보자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려 두 가구당 한 집 꼴로 차를 보유하게 된 지금과는 달리 자동차란 게 일부 부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땐 차가 사람을 피해 다니는 게 아니라 사람이 차를 피해 다니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었다.



자연 차와 사람 간 접촉사고가 일어나도 오히려 큰소리치는 차주들이 적지 않았다. "이 차가 이게 얼마짜린데 흠집을 내? 너 이거 물어줄 돈 있어?" 하는 식이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던 시절이었고, 인터넷이 없었던 덕분에 자동차 정도 끌고 다니는 소위 가진 자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큰소리 탕탕 칠 수 있었던 때였다.



그 잘못된 전통이 이어져 내려와 마이카 시대가 열려 자동차가 대중화된 뒤에도 한참동안 도로 위에선 목소리 큰놈이 왕이란 생각들이 팽배했었다. 신호위반을 했건 뭘했건 사고는 제가 쳐놓고도 "내가 뭘 잘못했어? 당신이 잘못했잖앗!" 하고 큰소리부터 치고 보는 게 교통사고 처리 관행이 돼버렸다.



그나마 몇년 전부터 차량용 블랙박스가 대다수 운전자들의 필수템이 되면서 이같은 관행이 많이 사라졌는데, 목소리 높여 아무리 우겨봐야 현장 상황을 그대로 재생해 보여주는 블랙박스 앞에선 아무 소용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문철의 블랙박스 속 세상이니 하는 TV프로들이 인기를 끌면서부턴 더더욱 목소리 큰게 장땡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하지만 세상이 변해도 어느 누군가는 그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었다. 앞서 예로 든 택시기사도 바로 그런 부류 아닌가 싶다. 거의 모든 차마다 블랙박스가 설치된 것은 물론 길거리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어 마음만 먹으면 사고 당시 상황을 얼마든지 되돌려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 큰소리부터 내지른 걸 보면 말이다.



다행히도 잠시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린 피해 학생은 나름 야무지고 똑똑한 친구였던 모양이다. 마치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양 큰소리를 치던 끝에 택시기사가 슬그머니 가던 길을 재촉하려 들자 "잠시만요" 하고 제지하더니만 곧바로 전화기를 꺼내 "경찰이죠? 여기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요 현장출동 부탁합니다" 하고 요청한 걸 보면 확실히 그랬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어,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짓더니만, 이내 울상이 됐다. 상대가 어린 학생이란 걸 기화 삼아 큰소리 좀 친 뒤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심산이었던 거 같은데, 경찰 신고까지 당한 마당이니 그대로 갔다간 12대 중과실에 뺑소니죄까지 피할 길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합의금 같은 보상을  하겠다 나섰으면 좋았을 걸 싶었을 거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짓을 저질렀을 때 이에 맞서는 자세다. 잘못을 솔직히 인정한 뒤 사과를 하고, 피해를 끼쳤다면 적절한 합의금 지급 등 보상까지 해주는 게 도리인데, 상대가 나이 어리다는 이유 등으로 대충 뭉개고 지나가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다.



상대가 어수룩하면 운좋게 그게 먹힐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지혜나 판단력마저 어릴 거라고 착각하진 말아야 한다. 앞서 얘기한 택시기사 사례처럼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진심이 깃든 사과에 얼마간의 합의금 지급 같은 보상이면 잘 끝날 수도 있었을 일을 굳이 입으로 천냥 빚을 자초해서는 교통사고 12대 중과실 처벌에다가 뺑소니 범죄자 전과까지 따따블로 자초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날개 없는 천사를 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