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 이후 생긴 딸아이의 버릇

소소잡썰(小笑雜說)

by 글짓는 사진장이


딸아이가 여섯 살 되던 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있었던 일입니다. 기독교나 천주교 류의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평소 기념할 만한 것은 가급적 모두 기념하면서 삶을 즐겁게 살자는 생각을 갖고 있는 까닭에 이날도 우리 가족은 어김없이 작은 기념잔치를 열었죠. 아내와 내가 1년 차로 생일이 같고, 딸들 역시 쌍둥이라 생일이 같다 보니 식구수에 비해 기념일이 많이 부족한 탓입니다.


기념잔치라고 해봐야 작은 케이크 하나에 그리 비싸지 않은 와인 한 병과 촛불 몇 개, 폭죽 두세 개를 곁들인 정도에 불과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잔치라는 건 모인 사람들이 즐겁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어둠이 온누리에 두터운 장막처럼 둘러쳐진 늦은 저녁시간, 크리스마스 이브가 뭐하는 날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케이크의 등장만 반가워 딸아이는 입이 헤~벌어졌고, 하나둘 촛불을 밝히면서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은 우리 집 작은 잔치는 시작됐습니다.


이어 딸아이가 낭랑한 목소리로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하는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 잔치의 흥을 더했습니다. 원래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는 게 격식에 맞겠지만, 케이크만 봤다 하면 생일축하 노래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딸아이를 말릴 방법이 없었고, 또한 별로 말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던 까닭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게 예수님 생일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한 날이고, 그런 바에야 크리스마스 캐롤 대신 생일축하 노래를 좀 부른다고 해서 크게 잘못될 것도 없겠다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불어 끈 뒤 우리 가족은 얼마간의 엄살과 두려움으로 "귀 막아, 귀 막아!" 어쩌구 한바탕 소란을 떨며 폭죽까지 동원해 남의 생일을 빌어 한껏 잔치 기분을 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딸아이가 그 동안 그토록 간절히 기다려온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전달받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아내와 나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가장 멋지게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전해줄 수 있을까 하고 적지않이 고민하게 만들었던 순서이기도 하구요.


어쨌거나 이 순서를 맞아 아내와 나는 딸아이 몰래 의미있는 눈빛을 교환한 뒤, "자 그럼 이제부터 산타 할아버지에게 소원을 빌어야지!" 어쩌구 하며 딸아이에게 기도를 권했습니다. '그 동안 엄마 아빠 말도 잘 듣고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착한 일 많이 했으니 선물 주세요'하고 간절히 기도를 하면, 산타 할아버지가 평소 갖고 싶어했던 선물을 주실 거라고 말이죠.


엄마 아빠의 이 같은 말에 딸아이는 눈을 질끈 감은 뒤 두 손을 곱게 모아 간절히 간절히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간절히 기도만 하면 정말 틀림없이 원하던 선물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는 듯했죠. 기도 중간중간 한 쪽 눈을 살금 뜨고 주변 동정을 살핀 것은 아마도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지고 오나 안 오나 한시 바삐 확인하고 싶은 조급한 심정의 발로였을 겁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뒤, 아내와 나는 "산타 할아버지가 방금 전에 우리 딸 침대에다가 선물을 놓고 가셨네. 얼른 가서 한 번 확인해 봐!"하고 딸아이에게 기쁜 선물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에 딸아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날쌔게 제 방으로 뛰어갔고, 아내와 내가 몰래 침대 위에 올려놓은 선물을 찾아 들고서는 입이 귀 밑까지 걸려 뛰어왔습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어디 가셨느냐며 기도를 하느라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한 것을 얼마간 아쉬워하긴 했지만 그건 잠시뿐이었고, 선물 포장지를 풀어헤치는 순간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장난감 손목시계에 딸아이는 다시 한번 입이 귀 밑까지 걸리고 말았습니다. 최근 들어 거의 보름 가까이 틈만 나면 제 엄마에게 사달라고 매달리곤 하던 게 바로 그 손목시계였으니까요.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이 크리스마스 이브 이후 딸아이에게는 한 가지 특이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뭔가 갖고 싶은 것만 생겼다 하면 거실 한 켠에서 기도를 올린 뒤, 기도를 마치기가 무섭게 재빨리 제 방으로 뛰어들어가 침대 위를 살피는 버릇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아내와 나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눌러 참곤 합니다.


아마도 오래지 않아 딸아이는 선물이 아무 때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 때 주어지는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라는 것도 사실은 제 엄마 아빠에 의해 연출된 일종의 사기극(?)이라는 것도 알게 되겠지요.


부디 그 날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비록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가 사실이 아니라 할 지라도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선물을 받게 된다는 믿음을 오래도록 가슴에 간직한 채, 삶을 긍정하는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딸아이가 세상을 살아주었으면 하는 욕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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