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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an 26. 2024

밥차 앞에선 만인이 평등하다는 장항준 감독

이미지출처  : 유튜브 화면캡처



촬영장에서 먼저 밥을 먹으려고 "컷!"을 외치기가 무섭게 혼자 우다다다다 밥차를 향해 달려간다는 장항준 감독 얘기를 처음 듣는 순간 나는 '뭐 이런 얌생이 같은 베이비가 다 있엇?' 하는 생각을 떠올렸었다. TV 예능 등을 통해 몇 차례 본 적 있는 영화 촬영현장 분위기가 떠올라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영화 촬영현장에서의 "컷"이라는 한 마디는 신성불가침에 가까운 감독만의 고유권한이다. 그런데 감독이라는 작자가 컷을 외치기 무섭게 혼자 우다다다다 밥차를 향해 달려간다는 건 일종의 내부정보 혹은 미공개정보를 악용한 반칙행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거다. 100미터 달리기로 비유하면 남들 막 출발선 주변으로 어슬렁거리며 모여들고 있을 때 심판 권한을 가진 특정선수 혼자 "준비 땅!" 하며 출발선을 박차고 나가는 거나 매한가지다.


'잘 알지는 못해도 장항준이 그렇게 질 나쁜 베이비는 아닌 걸로 알고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다른 한편으로 들긴 했지만, 그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이 방송씩이나 출연해 본인 면전에서 대놓고 한 얘기니 마냥 지어낸 스토리는 아닐 거란 판단이 들었다.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물하기 위해 좀 과장되게 희화화했을 거긴 하되 스토리의 기본뼈대는 사실을 근거로 했을 거란 얘기다.​


그런데 이어지는 다음 얘기들을 듣는 순간 나는 '아항!' 하고 무릎을 탁 쳤다. 다른 곳들과는 달리 장항준 감독 촬영현장에선 감독이건 제작자건, 주연배우건 보조출연자건 상관없이 무조건 '선착순'으로 밥을 먹는 게 국룰로 정해져 있다는 게 그것이었다. 스탭 중 누군가가 감독님 밥이라며 따로 챙겨준다거나, 귀하신 주연배우님 번거롭지 않게 담당 매니저가 밥을 타다 바치는 영화판 관행들이 그가 감독을 맡고 있는 현장에선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 전부터 좀 독특한 스타일의 감독이라는 느낌이 들긴 했었지만,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장항준 감독이란 사람을 다시 한번 보게 됐다. 관객수 500만, 천만을 찍는 스타 감독은 아닐지 몰라도 권위의식과 잘못된 관행들이 횡행하는 우리나라 영화판 문화를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선구자다 싶어서 인간적으로 존경하고픈 마음마저 일었다.​​


자본주의 사회다 보니 출연료 차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밥 앞에선 그 어떤 차별도 있어선 안된다는 듯 '선착순'을 도입한 장항준 감독. 처음에 "컷!"을 외치기 무섭게 혼자 우다다다다 밥차를 향해 달려간다는 얘길 들었을 땐 "뭐 이런 베이비가 다 있엇!" 싶었지만, 혹시 그의 튀는 행동은 밥차 앞에선 순서도 체면도 필요없다는 걸 솔선수범해 몸소 보여주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콩깎지마저 눈에 씌워지게끔 만들었다.


이를테면 무협만화에서 천인공노할 막강한 적을 마주했을 때 소림사 방장쯤 되는 이가 한발 앞으로 쓱 나서면서 "오늘 내가 부득불 살계(殺界)를 열겠노라. 내가 먼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가겠는가" 하는 식이다. 군대 계급사회 찜쪄먹는 영화판에서 감독이 먼저 밥차를 향해 뛰지 않으면 누가 감히 밥차를 향해 뛰어 가겠느냐 뭐 그런 솔선수범내지 살신성인쯤 되지 않을까 싶다는 얘기 되시겠다.


'선착순'이라는 밥차 룰을 모두의 룰로 만들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컷!"을 외치기 무섭게 혼자 우다다다다 밥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를 장항준 감독과, 뒤질새라 그 뒤를 이어 눈썹이 휘날리도록 열심히 내달리고 있을 주연배우들, 보조출연자들, 영화 스탭들, 매니저들 모습을 머리 속에서 그려보노라면 나도 모르는 새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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