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을 주차장답게 만드는건 빈 통로다

소소잡썰(小笑雜說)

by 글짓는 사진장이


어떤 회사가 입사시험을 치루고 있었습니다. 필기시험 중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길에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는데, 그곳에는 세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죽어가고 있는 듯한 할머니, 당신의 생명을 구해준 적이 있는 의사,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


당신은 단 한 명만을 차에 태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태우겠습니까? 선택하시고, 설명을 하십시오.

(더 읽기 전에 반드시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아마도 성격 테스트의 일종일 것입니다. 어떠한 답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은 죽어가는 할머니를 태워 그녀의 목숨을 우선 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의사를 태워 그의 은혜를 갚을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사에게 보답하는 것은 나중에도 가능한데 반해, 이 기회가 지나고 나면 이상형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응시자 중 200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최종적으로 채용된 사람이 써낸 답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도대체 뭐라고 했을까요?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의사선생님께 차 열쇠를 드리죠.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도록. 그리고 난 내 이상형과 함께 버스를 기다릴 겁니다."


아마도 평소 유머를 즐기시는 분들이라면 적지않은 분들이 인터넷 등에서 직접 읽거나 입소문을 통해 들어보셨을 것이고, 경쟁자들을 모두 제치고 최종적으로 남은 사람의 답을 접하는 순간 무릎을 치며 '바로 이거야!'하고 생각들을 하셨을 이 얘기는 얼마 전 한 후배가 메일을 통해 나에게 보내온 것입니다.


나 또한 언젠가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예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글을 다시 접하는 순간 앞서 읽었을 때와는 다른 어떤 느낌 하나가 가슴을 파고 들더군요. 이 글이 전하는 메시지가 단순히 어려운 문제를 지혜롭게 푸는 한 가지 방법을 예시하는 차원을 넘어, 무언가 우리 삶 전반에 꼭 필요한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를 골똘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엔 무엇인가 잡힐 듯 잡힐 듯 어지럽게 주변을 맴돌기만 하던 생각들이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점차 윤곽이 잡히더군요. 그리고 그 윤곽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나를 비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서의 어느 회사 시험문제 얘기를 예로 든다면, 최종적으로 선발된 응시자가 '내 차 운전석은 나 아닌 다른 누구도 앉을 수 없는 자리'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그 자리로부터 나를 비운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면 결코 그 같은 답을 써낼 수 없었을 겁니다. '나'라는 존재가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 있는 한은 자동차의 남아 있는 자리는 단 한 자리일 수 밖에 없고, 태워줄 수 있는 사람 또한 단 한 명 밖에는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두 명 밖에는 탈 수 없는 자동차에서 결연히 '나'를 비움으로써 그 안을 보다 중요하고 보다 값진 것으로 충만케 하고, '나'라는 존재 또한 기쁨을 얻었으니 이 어찌 탁월하고도 지혜로운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이 얘기와 관련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나는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한 아기를 두고 두 여자가 서로 자신이 아이의 엄마라고 주장을 하다가 결국 재판까지 받게 되었다는 얘기가 그것입니다.


재판관은 여러 차례의 심문에도 불구하고 두 여자가 모두 아기 엄마라는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자 "양쪽에서 아기를 서로 당겨 이기는 편을 엄마로 인정하겠다"는 판결을 내렸고, 진짜 엄마는 아기가 아파하는 모습을 견디지 못해 중간에 손을 놓고 말았으며, 덕분에 지혜로운 재판관의 도움을 받아 아기를 되찾게 됐다는 내용입니다.


이 또한 사랑하는 아기를 위해 '엄마로서의 나'를 비우고 버림으로써 마침내는 좋은 결과를 보게 된 사례인데,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차지하고 가득 채우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차공간이 아무리 부족하고 주차장을 차량들로 빼곡히 채워 최대한으로 돈을 긁어들이고 싶다 하라도, 차량들이 들고 나는 통로만큼은 비워둘 수 밖에 없습니다. 통로를 비워두지 않으면 그건 주차장이 아니라 차량들의 무덤이 될테니까요.


결론적으로 주차장에서의 비어 있는 공간인 이 통로는 주차장을 비로소 주차장이게 하는 존재인데, 사람들 또한 이 같은 비어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가득 채워지지 않고,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들고 날 수 있도록 해주는 빈 공간이 남아있을 때 사람은 좀더 사람다워지는 동시에 삶에 여유를 얻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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