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작전도 실패, 등을 긁어줬더니...

소소잡썰(小笑雜說)

by 글짓는 사진장이


딸아이가 4살 때 일입니다. 그날은 퇴근과 함께 탐스러운 국화꽃 한 다발을 사들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전날 저녁 회사 일로 술 한 잔 거하게 마신 뒤 집에 돌아갔다가 사소한 시비 끝에 한바탕 부부싸움을 한 때문입니다.


누구의 잘 잘못을 떠나 부부싸움이란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빨리 풀어버리는 게 결과적으로 남는 장사(?)라는 것을 알기에 아내에게 꽃 한 다발을 안기며 두루뭉술하게 화해무드를 조성해 보려던 것이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아내는 꽃다발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아마도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습니다.


네살배기 딸아이를 시켜 꽃다발을 받으라고 종용해보기도 했지만, 아내는 한사코 받지 않겠노라고 버티더군요. 그 와중에 딸아이는 엄마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인해 아빠가 시킨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이 화가 나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는데, 공연히 고래싸움에 새우등만 터진 꼴이 됐습니다.


꽃이 그냥 시들어버리는 것이 아까웠던 듯 나중엔 비록 슬그머니 가져다가 꽃병에 꽂아놓긴 했어도, 아내는 좀처럼 화를 풀지 않았습니다. 딸아이와는 잘도 어울려 깔깔대면서, 나를 향해서는 계속해서 찬 바람만 풀풀 날리더군요.


분명 쌍방과실로 말미암아 벌어진 부부싸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있노라니 왠지 앉은 자리도 편치 않고, 주말인 만큼 좀 편히 쉬고 싶은데 도저히 편하게 쉴 수가 없었습니다.


꽃다발 작전이 실패한 뒤, 그래서 나는 나름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일요일 아침 늦잠을 주무시는 마눌님이 아침밥 준비하기가 번거로울 것 같아 없는 용돈을 털어 짜장면을 시켜다 정성껏 바치기도 하고, 오침을 즐기는 마눌님을 위해 쉬는 날의 가장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인 낮잠을 포기한 채 졸린 눈을 비비며 딸아이와 성심성의껏 놀아주기도 했죠.


그러나 아내는 그런 나의 눈물 어린 성의 표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화를 풀지 않았습니다. 여차하면 부부싸움의 여파가 장기전 양상을 띠게 되는 것 아닐까 우려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까 골똘히 궁리하던 중, 마침내 나는 절호의 기회 하나를 포착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지루하게 이어지던 부부싸움의 여파를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정말 엉뚱한 방향에서 불쑥 찾아왔습니다. 아내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TV를 보던 중, 문득 아내가 등 뒤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이 가려웠던 듯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게 내 눈에 포착된 게 바로 그거였죠. 바로 이거다 싶더군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내가 긁어줄게!”하며 살금살금 다가들자, 아내는 “흥, 필요없어!”하며 처음엔 몸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항우장사도 못참는 게 간지러움과 가려움인 바에야 아내라고 해서 별 수 있을 리 없었습니다. 결국은 못이기는 척 등을 내밀더군요.


옷 안으로 손을 넣어 가려운 등을 긁어주자 아내는 쑥스러운 듯 피식 웃었습니다. 부부싸움 이후 이틀간이나 찬 바람만 쌩쌩 불던 얼굴에 한 줄기 따뜻한 바람이 분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어떤 이유가 됐건 속살(?)을 허용한 터에, 더 이상의 말이나 겉으로 드러난 얼굴 표정 따위는 아무런 필요나 의미가 없어졌던 겁니다.


꽃다발 선물이나 외식 공세, 낮잠을 포기해 가면서까지 헌신적으로 딸아이와 놀아준 것으로도 풀지 못한 아내의 마음을 가려운 등 한 번 긁어주는 것으로 간단히 풀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부로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것들이 정말 많이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가려울 때 서로의 등을 긁어줄 수 있는 서로의 손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은밀을 요한다면 은밀을 요하는 부분이기에 부부 간과 같은 서로 흉허물없는 사이에서만 가능한, 그리고 그 어떤 물질적인 것이나 다른 어떤 사람도 결코 대신 충족시켜 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서로의 등을 긁어주는 류의 행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이 들어 홀로 되신 노인분들이 입버릇처럼 "등 긁어줄 사람이 없어서 서럽다"고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그제서야 이해할듯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등 긁어줄 사람이 곁에 남아 있고, 서로가 필요로 할 때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살 수 있는 것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 속에서 소중히 여기고 잘 간직해야 할 작은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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