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잡썰(小笑雜說)
설날 직후의 일입니다. 냉장고에 먹다 남은 떡국용 떡이 있길래 우리 가족은 모처럼 떡볶이를 해먹기로 했습니다. 맨날 아내가 해준 음식을 얻어 먹기만 해 온 빚(?)도 좀 갚을 겸, 여유로운 토요일 저녁을 맞아 정말 오랜만에 내가 실력 발휘를 한 번 해보기로 한 것이죠.
전기밥솥을 이용해 밥을 하는 것과 라면을 끓이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 할 줄 아는 음식이 거의 없는 내가 예외적으로 할 줄 아는 단 한 가지 요리가 바로 떡볶이입니다. 비록 단 한 가지 뿐이기는 하지만 입맛 까다로운 아내조차 제법 그 맛을 인정해줄 정도로 잘 만든다는 점에서 나로선 일면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는 일품요리이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 떡볶이 노하우는 대학시절 한 여대 앞에서 입맛 까다로운 여대생들을 상대로 포장마차를 하며 떡볶이를 팔았던 한 후배로부터 전수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여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아내에게도 충분히 통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모처럼 한번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나는 떡국용 떡과 고추장, 설탕, 대파, 오뎅, 라면 등등 떡볶이 요리에 필요한 각종 재료들을 준비한 후, 바닥면이 넓은 냄비를 올려놓고 가스렌지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는 오래 전 후배로부터 전수받은 비법을 되새김질해가며 맛있는 떡볶이 만들기에 온 힘을 기울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 떡볶이 요리를 하다 보니, 고추장 특유의 매운 기운과 가스렌지의 더운 열기 등이 어우러지면서 갑자기 몹시 덥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무심코 바로 옆에 있던 부엌 창문을 열었습니다. 베란다와 맞닿아 있는 예의 부엌 창문을 열자 일순 차가운 겨울바람이 시원하게 들이치면서 좀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아차!’ 하는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평소 아내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가 덥다고 창문을 열거나 하면 추워 죽겠는데 한겨울에 창문은 왜 여느냐고 한 마디씩 구박을 줘 오던 게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비싼 가스 때워 난방을 해놓고는 왜 쓸데없이 창문을 열어 집안을 춥게 만드느냐는 것이었죠.
어려서부터 겨울이면 실내 공기가 몹시 차가웠던 추운 집들에서만 커오다 보니, 겨울철 실내 공기가 차가운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서 더 그랬을 겁니다. 그 결과 가족중 누군가가 겨울철에 거실 쪽이 됐건 부엌 쪽이 됐건 베란다 창문만 열어놨다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싫은 소리를 내뱉는 좋지않은 습관이 든 거죠.
그런데 아내의 자리에 서서 어쩌다 한 번 일을 해보니, 평소 아내가 일하면서 왜 자꾸만 부엌 창문을 열어젖히곤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자리에서는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들이 아내의 자리에서 보면 얼마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들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면서 앞으로는 좀더 아내의 자리, 아내의 눈높이에서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자리, 아내의 눈높이가 나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겠다는 뒤늦은 깨달음을 얻은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난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리가 모두 끝난 후 내가 만든 떡볶이를 맛있다며 먹어주는 아내의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아내가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내가 그렇게 게걸스럽게 먹어준다면, 아내 또한 나처럼 기뻐하고 흐뭇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흉허물 없는 가족 사이라고는 해도 서로 조금씩은 다르게 마련인 서로의 자리와 눈높이를 이해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조금씩만 더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고 서로 배려해 나간다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지금보다는 훨씬 많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