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해야 할 효도는 세 살 때 이미 다했다>라는 주제로 연재해 나갈 이 글은 우리 쌍둥이 딸들이 3~4살 때인 지난 2000~2001년 사이 썼던 걸 정리한 거다. 중간중간 6~8살 사이 기록도 있다. 낼모레면 꺾어진 환갑이라 주장하는, 어느덧 서른 가까이 돼가는 딸들의 프라이버시 존중을 위해 글 속 등장인물들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다.
ⓒ사진, 글 : 글짓는 사진장이
“아름아, 다운아! 이제 그만 예쁜 꿩아 안녕 하고 가야지?”
“아름아, 다운아! 원숭이 빠빠이 하고 이제 가자.”
봄볕이 따스하게 내려쬐는 주말을 맞아, 가족나들이차 동물원을 찾은 집사람과 나는 동물우리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드는 아이들과 씨름하기 바쁘다.
새봄 들어 날이 좀 풀리면서부터는 거의 매주 찾는 동물원이건만, 올 때마다 아이들은 모든게 새롭고 신기한 모양인지 동물들이며 나무들에 온 넋을 빼앗기곤 한다. 덕분에 힘들어지는건 집사람과 나다. 아이들의 낮잠 잘 시간, 끼니를 챙겨야 할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뭔가에 푹 빠져있는걸 제때 말리지 못해 낮잠 잘 시간을 놓치고, 그로 인해 차 안에서 잠시 선잠만 자게라도 하는 날엔 그날 하루의 남은 시간 대부분을 컨디션 난조로 징징거리는 아이들과 씨름해야 하므로.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건, 우리 아이들의 경우 인사하는걸 매우 좋아해 “우리 이제 원숭이한테 빠빠이 하고 그만 가자” 하고 꼬시면 인사하는 재미로 비교적 쉽게 떨어진다는 것인데, 그렇다곤 해도 동물우리가 한두 개도 아닌 터에 언제 그걸 다 일일이 “빠빠이”를 해준단 말인가?
새봄 들어 우리 가족은 이렇게 거의 매주 주말마다 동물원을 찾는다. 요즘은 어딜 가나 자동차가 너무 많아 마음놓고 아이들과 산책을 하기가 힘이 들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 안만 하더라도 들고 나는 차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좀 하려면, 뭐 하나 무서운게 없어 차가 와도 아랑곳 없이 그 앞으로 달려드는 등 제 멋대로 튀어나가려는 아이들을 제대로 간수하는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가 회사에 출근하고 집사람 혼자 있을 땐 좀처럼 아이들을 밖에 데리고 나오질 못한다. 한 녀석이라면 손목을 꼭 틀어쥐고 다니면 되겠지만, 고만고만한 녀석이 둘이나 되다 보니 도저히 감당이 안되기 때문이다.
평소 이렇게 바깥 나들이를 별로 못해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은 내가 집에 있는 날, 밖에 나가자고만 하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들 옷가지며 양말을 찾아들고 와 어서 입혀달라고 조르고, 집사람이나 내가 옷을 갈아 입느라 잠시 지체되면 어서 신발 신겨 달라고 현관문 앞에서 한바탕 난리법석을 떤다.
아이들의 안목도 넓혀줄 겸 욕심 같아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좀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지만, 아이들의 차멀미나 시간적 경제적 사정 등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하고, 차 없는 장소에서 아이들이 좀 마음놓고 뛰놀게 하려다 보니 가장 만만한게 집 근처 동물원이라 그곳을 자주 찾게 된 것이다.
여하튼, 일단 동물원 문을 들어서면 엄마 아빠의 고충이야 내 알 바 아니라는듯 아이들은 맑은 눈망울을 빛내며, 무엇 하나 빼트릴세라 잠시도 쉬지 않고 참 열심히도 두리번 거린다. 그러다가 뭔가 마음에 드는걸 하나 발견하기만 하면 미처 말릴 겨를도 없이 뽀르르 달려가 매달려 버린다.
일단 아이들이 무언가를 향해 뽀르르 달려가기 시작하면 집사람과 나는 허둥지둥 뒤를 쫓아다니며 주변에 뭐 위험한건 없나 살펴보기 바쁘다. 차도 없고 특별히 위험하다고 할 만한 것도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건 아이들이란 존재는 부모들의 안심을 불허한다.
엄마 아빠가 곁에 붙어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옵션은 붙지만, 이렇게 우리 아이들의 세상 나들이는 시작되고 있다. 그 전에도 바깥나들이를 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지들 마음과 발 가는대로 세상구경을 나선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 당장은 동물원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 세상에 불과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세상이라는 것도 크기만 좀더 크다뿐 울타리이기는 매한가지인 터.
비록 이래저래 울타리 안 세상을 살기는 매한가지일지언정 이제 막 세상나들이에 나선 두 딸을 바라보며 아빠로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아름’과 ‘다운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세상 온갖 것들을 아름답게 품을 수 있는 가슴을 간직한채 예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