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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서서 쉬하잖아요!"

by 글짓는 사진장이


<네가 해야 할 효도는 세 살 때 이미 다했다>라는 주제로 연재해 나갈 이 글은 우리 쌍둥이 딸들이 3~4살 때인 지난 2000~2001년 사이 썼던 걸 정리한 거다. 중간중간 6~8살 사이 기록도 있다. 낼모레면 꺾어진 환갑이라 주장하는, 어느덧 서른 가까이 돼가는 딸들의 프라이버시 존중을 위해 글 속 등장인물들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다.
ⓒ사진, 글 : 글짓는 사진장이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화장실 쪽에서 문득 뭔가 이상한 기척이 전해져 오더군요. 가만 주의를 기울여보니 오줌을 누러 화장실에 들어간 딸아이가 무슨 영문인지 그 안에서 혼자 키득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섯 살배기 또래 여자아이들이라는 게 다 그런 건지는 몰라도 원래 별의별 것을 다 가지고 혼자서만 재미 있어 죽겠다는 듯 깔깔 대기 일쑤인 게 딸아이이긴 했지만, 도대체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다가 말고 갑자기 키득거릴 일이 뭐가 있을까 궁금하더군요. 하루에도 몇 번씩 누는 오줌이 뭐 그리 새로울 게 있고 재미 있다고 그러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러나 이 같은 나의 궁금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서의 볼 일을 마치기가 무섭게 쪼르르 내게 달려온 딸아이가 친절하게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볼 일을 마치기가 무섭게 “아빠 아빠!” 하고 호들갑스럽게 나를 부르며 달려 오더니만, 딸아이는 “나도 아빠처럼 서서 쉬 했어요!” 하고 자랑을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설명을 종합해 본즉 딸아이는 아빠 흉내를 내느라 그리 크지도 않은 그 키를 해가지고서는 어떻게 어떻게 좌변기를 내려다 보며 서서 오줌을 누는데 성공을 한 모양이었고, 그런 스스로가 너무도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던 나머지 화장실 변기를 마주한 채 득의양양해져서는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던 겁니다.

그런 딸아이를 보며 나는 잠시 할 말을 잊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라는 게 원래 좀 엉뚱한 구석이 있고, 어쩌다가 아빠가 서서 오줌 누는 모습이라도 보게 되면 얼마간 부러워해 마지않곤 하던 딸아이의 모습을 그동안 봐온지라 여자 몸으로 불편을 무릅써가며 서서 오줌 누기를 감행한 그 마음을 알 듯도 했지만, 이건 정말 예상치 못했던 엉뚱하디 엉뚱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렇다곤 해도 뭔가 한 마디 하긴 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일을 저지르기가 무섭게 쪼르르 달려와 이러쿵 저러쿵 상황을 고한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딸아이가 기대한 것은 어려운 일을 정말 잘도 해냈다는 식의 칭찬이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그것은 결코 칭찬해 줄만한 일도, 권장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이에 나는 “오줌 눌 때는 좌변기에 얌전히 앉아서 눠야지!” 하고 훈계조로 딸아이에게 일렀는데, 그러자 딸아이는 대뜸 “아빠도 서서 쉬 하잖아요?” 하고 따지고 들더군요. 아빠는 서서 오줌을 누면서 왜 자기보고만 앉아서 오줌을 누라고 하느냐는 항의일 겁니다. 그 순간 오래전 어느 코미디 프로에서 한 여자 코미디언이 남녀평등을 주장한답시고 “여자도 서서 오줌눌 수 있게 해주세요!”하고 부르짖던 모습이 떠오르며 다시 한번 말문이 막히더군요.

예상치 못한 딸아이의 이 같은 반발 앞에 잠시 말문이 막히긴 했지만, 부모 입장인 나로서는 어린 딸아이가 자기도 아빠처럼 서서 오줌을 누겠다고 고집부리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제 옷이며 화장실을 오줌으로 온통 적셔놓을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친구들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놀림감이 되기 쉽겠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고민 끝에 내가 찾아낸 해답은 남자와 여자는 신체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오줌 누는 방법도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체구조상 남자는 서서 오줌을 누는 게 자연스럽고 편하고, 여자는 앉아서 오줌을 누는 게 자연스럽고 편하다는 사실을 딸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한 겁니다.

이를테면 남자라고 해서 앉아서 오줌을 누면 안된다는 법도 없고, 여자라고 해서 서서 오줌을 누면 안될 이유도 없지만, 신체구조상 그게 자연스럽고 편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그동안 남자는 서서 오줌을 누어 왔으며, 여자는 앉아서 오줌을 누어 온 것이라고 말이죠. 그러니 이런 자연스럽고 편한 방법을 두고 굳이 부자연스러우며 불편한 방법을 고집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설득을 한 겁니다.

이 같은 나의 설명에 딸아이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는 뜻을 나타내 보이더군요. 비록 서서 오줌을 누는데 성공을 하긴 했지만, 그 자세가 평소의 앉아서 오줌을 누던 것에 비해 자연스럽고 편할 리가 없었을 테니 딸아이로서도 남녀간 신체구조의 차이 등을 수긍할 수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겠죠.

이렇게 아빠를 흉내 내고 제 엄마를 흉내 내며, 제 키보다 몇 뼘쯤은 큰 키높이를 욕심 내며, 그리고 어른들로 하여금 기가 막혀 말문마저 막히게 만드는 엉뚱한 행동으로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숱한 사건들을 불러 일으키며 딸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가고 있습니다.

딸아이가 다음엔 또 어떤 예상치 못한 행동과 사건들로 우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지 자못 기대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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