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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비한 '대포'들 속 내 눈길을 끈 위풍당당 그녀
아주 특별한 사진 한 장 #8
by
글짓는 사진장이
Aug 4. 2021
초대형 연잎 위에 스님이 올라앉아 퍼포먼스를 펼치는 연화대좌 시연회가 해마다 열리는 전남 강진 남미륵사.
그래서 연꽃이 한창인 매년 이 맘 때면 멋진 작품 한 장을 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곤 한다.
연화대좌 시연회가 시작돼 주지스님이 살포시 초대형 연잎 위로 발을 올려 놓으면
사방을 꽉 둘러싼 채 삼각대와 망원렌즈로 중무장한 사진작가들은 일제히 화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타타타타 하고 연신 셔터 소리가 마치 포위망 안으로 들어온 적을 반드시 섬멸하기라도 하겠다는듯 다들 결사적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내 카메라 앵글 안으로 뭔가 이질적인 장면 하나가 틈입해 들어왔다.
망원렌즈와 삼각대로 중무장한 사진작가들 틈바구니에서 열심히 '폰카질'을 하고 있는 묘령의 여인이 그것이었다.
SNS용으로 '나 여기 다녀감' 정도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마치 작품 하나 건지겠다는듯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진을 담고 있었다.
검정 혹은 회색빛 아웃도어 일색인 사진작가들과는 달리 분홍빛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까닭에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녀는 '사진은 장비빨'이라는 속설 따위는 관심없다는듯 폰카 촬영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찍는지 어떤 장면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 달려가서 확인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면서 아주 당연한 사실 하나를
나는
새삼스러운 느낌으로 깨달았다.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람이 찍는 것이고, 따라서 어떤 장비를 쓰느냐보단 누가 어떻게 찍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마따나 정말 중요한 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사람인데,
우리는
자꾸 그걸
잊은채 장비를 탓하고 장비를 탐하곤 한다.
염화시중에 파안미소라, 부처께서 연꽃을 들어 사람들에게 보이시매 모든 사람이 그 뜻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가운데 오직 제자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 짓더라더니 카메라를 들고도 사진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이 우매한 중생놈의 어리석음을 어찌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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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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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겸 사진장이. https://m.blog.naver.com/bakilhong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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