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43
어머니 혹은 가족들과 함께 어딜 가려고 집을 나설 때면
아버지는 늘 혼자 저만치 앞에서 걸어가시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엔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 간 보폭의 차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나이가 좀 든 뒤 다시 살펴보니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왜 그럴까 곰곰 살펴본 결과 아버지는 늘 앞만 보며 걷는 게 눈에 띄었다.
가족들 앞에서 묵묵히 길을 열어나가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계셨다고나 할까?
그 뒤를 종종거리며 쫓느라 가족들은 많이 힘들어하고 때론 불만도 가졌지만,
의식 중이건 무의식 중이건 아버지는 당신 입장에서 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셨던 거다.
가장 먼저 비를 맞고, 가장 세찬 바람을 견뎌내야 하는 그 자리를 지키셨으니 말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간에 나는 50여 년을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오는 동안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언뜻 보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기라도 하는 것처럼
늘 저 앞에서 당신 혼자 훠이훠이 걸어가시곤 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서운하고 야속하게까지 느껴졌었던지 어머니는
아내와 내가 서로 손을 잡고 아웅다웅대며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우리 땐 참 바보같이들 살았는데 쟤네들은 참 재밌게 잘 살아" 하며
우리 부부를 부러워하는 한편 은근히 아버지를 한번씩 째려봐주곤 하셨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론 그런 무심한 남편이나마 생전엔 많은 의지가 되셨었노라며
산소 앞에서 혼잣말로 당신 근황이며 자식들 얘기를 아버지께 고하시는 어머니를 보노라면
가끔씩 술에 취해 자식놈들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를 잔뜩 사오시거나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자식들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시던 아버지의
그 무심한 듯 따뜻한 체온이 문득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