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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May 04. 2022

사고는 당했지만 당신은 운이 좋으신겁니다

소소잡썰(小笑雜說)

25년 전, 서른 몇 살 늦은 나이로 난생 처음 내 차라는 것을 갖게 됐을 때 일입니다. 그야말로 애지중지 차를 아낄 무렵이었는데, 서툰 운전솜씨로 어딘가를 다녀오던 길에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왕복 2차로의 국도를 달리던 중,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대형 덤프트럭 적재함 쪽에서 뭔가 툭 떨어진다 싶더니 와장창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진 유리 파편들이 앞유리를 덮쳐온 겁니다. 깜짝 놀란 나는 곧바로 갓길에 차를 세웠고, 운전석에서 내려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확인해보았습니다.


확인 결과 앞서 대형 덤프트럭에서 툭 떨어진 물체는 주먹보다 큰 돌멩이였고, 그 녀석이 내 차 왼쪽 라이트 부분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대형 덤프트럭이 마주 지나치는 순간 적재함에서 문제의 돌멩이가 떨어져 내리면서 내 차 라이트에 틀어박혔고, 라이트가 깨지면서 유리 파편들이 달리는 내 차 앞유리를 향해 날아들었던 겁니다.


운전경험이 제법 쌓인 지금이었다면 아마도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곧바로 차를 돌려 내 차에 테러를 가한 덤프트럭을 쫓아가 잡았을 겁니다만, 초보운전에 가까웠던 당시로선 그런 상황 파악 능력이나 추격 능력은 다른 세상의 능력일 뿐이었습니다.


새로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 생애 첫 차가 불의의 테러를 당한 만큼 분한 마음에 몸을 떨며 정비소를 찾았습니다. 졸지에 외눈박이가 되어버린 내 애마의 치료가 급했기 때문입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야간에 운전할 일도 종종 생기는데, 한 쪽 라이트 만으로는 밤길 운전이 쉽지 않다고 판단됐으니까요.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또 한 번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몸을 떨어야만 했습니다. 라이트 한 쪽이 깨진 걸 수리하는 건 그래도 몇 만 원 정도면 해결이 가능한데, 보닛 부분까지 찌그러져 있는 걸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라이트가 깨지기 전에 돌멩이에 맞은 것인 듯한데, 움푹까지는 아니더라도 새 차의 면모를 손상시키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찌그러져서 수리비 견적이 만만치 않게 나와 버렸습니다.


하지만 나의 이 같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정비소 사장님의 한 마디 때문이었습니다. "덤프트럭에서 굴러 떨어진 돌에 앞유리를 정통으로 맞은 뒤 당황한 나머지 핸들 조작을 잘못하는 바람에 언덕 아래로 나뒹구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래도 손님은 운이 좋으십니다"하는 말이 그것이었죠.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옳다 싶더군요. 운 좋게도 라이트에서 앞유리 사이의 그 1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를 격해 돌멩이에 맞은 덕분에 자칫하면 언덕 아래로 나뒹구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던 순간을 나는 수리비 얼마면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작은 피해만으로 면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누군가 사고를 당해 수리비가 너무 많이 나왔니 어쩌니 하며 속상해 하는 모습을 접할 때면, 사람 안 다친 것만 해도 어디냐고 위로를 하곤 합니다. 1년이면 교통사고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수천 수만 명인 세상에서 내 차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목숨을 잃게 하지 않고, 다른 차로 인해 나 자신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차는 고치면 되고 돈은 다시 벌면 그만이지만, 사람의 생명은 그렇지가 못하니까요. 그러므로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무릇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은 물론 다른 모든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운전이 서툴던 시절 불의의 사고를 한 번 당하고 난 뒤 나는 방어운전이라는 개념을 머리에 새기게 됐고, 조금 운전이 익숙해진 지금도 운전을 할 때면 안전거리 확보 등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곤 합니다. 그 덕분에 그때 이후 지금까지 나 자신은 물론 내 차들 또한 비교적 무탈하게 잘 지내오고 있는 중입니다.  


비록 그때 그 이름 모를 어느 운전자가 모는 덤프트럭으로 인해 차에 손상을 입고 적지 않은 금전적 손해까지 감수해야 했지만, 이를 계기로 방어운전을 몸에 익혀 지금까지 무탈하게 잘 버텨오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이 정도면 남는 장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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