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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n 09. 2022

손두부 맛집을 보면 헛웃음이 나오는 이유

소소잡썰(小笑雜說)


TV를 보다가 간혹 손두부 맛집이 소개될 때면 나는 TV 속으로 기어들어가기라도 할 것 같은 기세로 열심히 들여다보곤 한다. 식구들 사이에선 <두부돌이>라는 별명으로 통할 만큼 두부를 워낙 좋아하는 까닭이다.


어린 시절, 우리집 근처에 두부공장이 있어서 밥 먹듯이 두부를 먹고 자란 영향이 컸다. 두부공장에선 생산 도중 귀퉁이가 깨지거나 해서 온전한 모양을 갖추지 못한 두부들은 내다버리 듯 동네 주민들에게 헐값에 팔곤 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두부가 나올 시간 즈음이면 큼지막한 그릇 하나씩 챙겨 들고서는 앞을 다퉈 두부를 사러 가곤 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먹을 입들은 많았던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행여 줄을 늦게 서 빈손으로 돌아올세라 시간만 되면 가족 중 누군가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두부공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두부 같은 고단백 영양식품을 원재료인 콩보다 싼 값에 살 수 있는 기회란 그리 흔한 게 아니니까.


덕분에 나는 어려서부터 두부로 만든 다양한 요리들을 맛보며 자랄 수 있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한 가지 음식으로만 해 먹으면 금방 질린다는 사실을 체득한 어머니가 다채로운 음식들 안에 두부를 녹여내신 덕분이다. 두부를 동동 띄운 김치찌개와 두부찌개, 된장찌개는 기본 중의 기본이요, 두부를 듬뿍 갈아 넣은 만두라든가 양념간장을 곁들여 풍미를 더한 두부 무침, 기름에 바짝 튀긴 두부전, 볶은 김치를 곁들인 두부김치, 비지찌개 등등 두부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많고도 많았다.


그런 인연으로 좀 커서는 어디에 두부 맛집이 있다는 소리만 들으면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곤 했다. 그 횟수에 비례해 입맛도 점점 까탈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좋은 국산콩을 재료로 가마솥에 장작불로 정성스레 끓여낸 손두부에 한 번 맛을 들이고 난 뒤론 특히 더 증상이 심해졌다. 원래 사람 입맛이라는 게 업그레이드는 쉬워도 다운그레이드는 어려운 법이었다.


간혹 TV에서 손두부 맛집이 소개될 때면 TV 속으로 기어들어가기라도 할 것 같은 기세로 열심히 들여다보게 된 것도 그래서였을 거다. 백인백색 천인천색이라 아직 맛보지 못 한 맛있는 손두부를 먹어보고 싶다는 <두부돌이>로서의 바람도 있었고, 가마솥과 장작불을 배경으로 맛나게 빚어지는 손두부 만드는 과정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사진작가로서의 욕심도 있었다. 



그런 바람과 욕심 덕분에 나는 손두부 만드는 과정이라든가 그 뒤에 숨은 얘기들을 지근 거리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무쇠 가마솥에 콩을 삶는 단계부터 간수를 섞어 응고시키는 단계까지 그 단계단계마다 얼마나 많은 정성과 힘이 들어가야 하는지도 알게 됐고, 2시간은 꼬박 걸리는 그 일련의 단계들을 거쳐 두부 한 판을 만들어봐야 고작 열둘에서 열다섯 모 밖엔 나오지 않는다는 현실도 알게 됐다. 손두부라는 건 가성비라든가 경제성 측면에선 별로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100% 국산콩을 사용했다면서도 한 모에 2~3000원쯤 받는 두부는 일단 의심부터 해봐야 한다"던 어느 잡지에 실린 두부 전문가의 말도 비로소 나는 이해를 하게 됐다. 100% 국산콩 사용 시 재료비만 해도 얼마인데 그 가격이 가능하겠느냔 주장이었는데, 콩농사까지 지어가며 손부두를 만들어도 남는 게 거의 없다는 분들을 직접 만나보니 정말 그렇겠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저런 까닭에 간혹 TV에 소개되는 손두부 맛집들을 보다 보면 나는 헛웃음이 터져나올 때가 있다. 사장 내외가 가마솥에 불을 때서 직접 손두부를 만든다고들 얘기하는데, 곰곰 생각해보면 그게 과연 가능할까 싶어서다. 내가 직접 지켜본 손두부 만드는 과정을 보면 커다란 가마솥 한가득 콩을 삶아 두부 한 판을 만들어봐야 맥시멈 열다섯 모 남짓 나오는 게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가마솥 2개를 사용해 동시에 작업을 한다 해도 2시간에 서른 모 남짓밖엔 나올 수가 없었다. 새벽 6시부터 시작해 점심시간 전까지 죽어라 만든다 쳐도 맥시멈 아흔 모를 넘기긴 어려웠다. 그나마 음식점 사장 내외 체력이 <강철부대> 수준이어서 쉼없이 계속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참고로 내가 직접 만나본 손두부 만드는 분들은 하루 두 판 이상은 힘들어서 도저히 못 한다고들 혀를 내두르시곤 했다.


그런데 그 손두부 맛집이란 곳들을 한 번씩 찾아가보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넘어까지 길게 줄을 서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맛집이랍시고 부러 찾아가 줄을 설 정도면 식전 간식으로 생두부 한 모는 기본이요, 사람 수대로 두부 요리를 시켜 먹을 건 불문가지임을 감안하면 사장 내외가 직접 만든 손두부 몇십 모 정도로 그게 감당이 될까 싶었다. TV를 보다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손두부 맛집들을 보면 내가 헛웃음을 짓는 이유다. 


두부, 특히 손두부에는 매우 진심인 <두부돌이>이기 때문에 부리는 필요 이상의 까탈스러움이나 의심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동네엔간 사장님 성이 손 씨라는 이유로 기계면을 쓰면서도 간판엔 <손짜장>이라 이름을 내건 중국집도 있다 들었는데, 마찬가지로 손두부 역시 어느 단계에서 어느 단계까지 수작업으로 해야 손두부라 이름할 것인가는 충분히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100% 국산콩 사용>, <가마솥에 장작불로 끓여낸 진짜배기 손두부> 같은 표현은 제발 함부로 쓰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세상에 그런 손두부가 얼마나 귀하고 드문 지는 나처럼 <두부돌이>라서 직접 쫓아다니며 먹어본 사람들이라면 많이들 공감할 거다. 전통의 맛을 살리기 위해 힘듦을 감내한 채 묵묵히 진짜배기 손두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 힘 좀 빼지 말아줬음 고맙겠다.


마찬가지 이유로 진짜배기 손두부에 대해선 일반 두부보다 얼마간 비싸다고 해서 함부로 비싸다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국산콩과 수입산 콩의 가격이 천지 차이인 건 둘째 치고라도 기계로 대량 생산하는 제품과 정성스레 손으로 만든 제품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가격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전통 방식과 전통의 맛을 지키는 건 미련하리만치 우직한 몇몇 장인 분들 몫일지 몰라도 그런 분들을 지켜야 하는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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