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도착해서 놀다가 주중엔 일을 하는 일정이었지만, 일 조차 사실 딱히 큰 미션을 가진 것은 아니었고 '베트남을 조금 더 이해하고 둘러보자' 였기 때문에 매우 편안한 상태로 호치민에 도착했다.
2년 만에 다시 방문한 호치민에서 총 4박 5일의 여정 동안 많은 것을 보고 즐겼다. 이 중에서 관광책자에 'Must see'로 소개되지는 않지만 충분히 가볼만한 곳들을 적어본다. 먹은 것들은 다음 글에서 소개할 예정.
1800년대 중반, 프랑스식민지정부가 인도차이나 전체를 통치하기 위해 건축한 건물이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 월남의 초대 대통령의 궁으로 사용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월맹(북)이 월남을 함락시키게 되고, 이후 월남의 사치스럽고 무능함을 고발하여 함락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일반인에게 공개하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잠시 잊고 건물, 그리고 그 안의 공간들을 살펴보면 매우 아름다워 감탄하게 된다. 100년 전의 것인데도 촌스럽지 않고 심지어 지하벙커의 공간들 조차 비례감이나 사용한 색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충분히 이런 점들을 조망해볼만도 한데, 구글을 검색해보아도 통일궁을 둘러싼 역사 이외에는 나오는 자료가 없다. 통일궁 개방의 목적이 '월남의 사치를 고발' 하는 데에 있다보니 평가받아야 할 훌륭한 공간들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통일궁이 꼭대기층엔 대통령가족이 기거하던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는데, 중앙에 위치한 작은 정원 위로 천장이 뚫려 있어서 비가 오면 참 멋있을 것 같다. 참 멋진 공간이었기에 호치민에 온다면 꼭 가보기를. 단점은, 호치민의 여느 공공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2년 전 베트남 첫 방문 시에 국립미술관은 이미 방문했었던 터였고, 그렇게 인상적인 기억은 아니었어서 이번엔 사설 갤러리 두 곳을 방문했다. 가장 대표적인 두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크기가 크지 않았다. Salon Saigon 이 가장 대표적인 사설 갤러리인데, San Art 라는 기존의 갤러리가 축소이전한 것. 'Future bodies of Asia' 라는 이름으로 일본 작가 두 사람의 미디어아트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다. 전시하는 작품 수가 많은 것은 아니라 '이게 다야?' 하고 실망할 수도 있다. 전시를 포함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고 하니 여행 전 미리 각 홈페이지 혹은 페이스북페이지를 참고해서 이벤트가 열리는 때에 맞춰 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사설 갤러리라 큐레이터가 따라다니며 말거는 게 아닐까 하고 지레 겁먹을 수 있는데(내가 처음에 그랬다), 갤러리 내에 비치되어 있는 팜플렛을 들고 조용히 관람하고 돌아가면 되는 구조라 부담가질 필요 없다. 호치민의 Art Scene 에 대해서는 이 기사에서 간단히 살펴볼 수 있다.
호치민을 여행하다 보면 대부분의 동선이 중심가인 1,2군에만 집중된다. 복잡하고 오토바이가 도로의 90%를 차지하고 교통신호는 무시되는 곳이 '베트남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차를 타고 약 7km 정도만 가다보면 새로운 세상이 나온다. 7군에 위치하고 있는 푸미흥지역은 97년 베트남과 대만 합작회사가 건설한 '계획도시'로 Modern urban city 를 표방하는 곳으로 '중산층 거주지'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호치민의 한인타운도 여기에 있고, IT회사들이 많이 위치해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 미팅하는 회사의 절반정도는 이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한국어로 된 간판이 굉장히 많이 보이고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카페, 레스토랑들도 많다. 1,2군의 구시가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호치민을 경험하고 싶다면 한 번 가볼만 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면, 꼭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재즈클럽에 간다. 재즈를 엄청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한 잔 하면서 즐길 거리가 있는 곳'이라서 혼자서도 심심하지 않게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 호치민의 Sax'n art Jazz club 은 지금까지 가본 어떤 재즈클럽보다 인상적인 곳이었다. 일단 사람이 많았다. 9시가 갓 넘은 시간부터 대기줄이 있었고, 합석을 해야할 정도였는데 재즈클럽의 피크타임이 11-12시임을 생각할 때 정말 엄청난 인기인거다. (현지인이보다는 외국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긴 했다) 레퍼토리도 좋았다. 차분한 연주가 몇 차례 진행된 후 성량이 풍부한 여성보컬이 노래 몇 곡을 불렀으며 이후 색소폰세션을 변경하여 더 힘이 세고 경쾌한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빠른 템포의 연주로 넘어간 후 각 세션들이 독주를 했는데, 어찌나 잘 하던지. 특히 두 번째로 투입된 색소포니스트의 연주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빠른 비트로 끊임없이 음을 쏟아내는데, 지치지도 않는지 끝에 가서는 소프라노와 알토 색소폰을 동시에 불어제끼기까지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는 베트남의 유명 색소포니스트이자 이 재즈클럽의 주인이었다. 그야말로 '파워풀한 무대매너' 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분이었음.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무더위에 지치고 익숙한(?) 힙스터 세계로 접속하고 싶을 때 이 카페들을 추천한다. 1군 중에서도 중심가에 위치해 있어서 접근성도 좋다. 로브스타가 지배하고 있는 베트남에도 스페셜티커피 바람이 불고 있고 그 대표적인 카페가 The workshop coffee(이하 TWC). 신기하게도 호치민의 힙!한 카페들은 모두 아래 사진과 같이 '정말 이 골목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카페가 있단 말이야?' 할 만큼 으슥하고 허름한 건물 2,3층에 위치하고 있다. TWC도 심각하게 무서운 건물을 의심하며 올라가다 보면 갑자기 짜잔 나타난다. 세가 비싸서인지, 아니면 그 으슥한 건물을 올라가는 것까지도 '힙'의 일부인건지도 ㅎ
호치민에 머무는 동안 4군데 정도의 핸드드립 전문 카페들을 방문했는데 대부분 약배전에 신 맛을 강조한 커피라 나와는 맞지 않았지만, 가장 마음에 들고 친절한 곳은 The workshop coffee 였다.
그리고 L'usine 은 남성편집샵과 카페가 결합된 형태로, 커피 뿐 아니라 다양한 디저트와 식사도 판다. 자체 레이블의 패션아이템들도 많아서 정작 구입할 건 없지만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아래 사진의 액자와 창에서 볼 수 있듯 베트남식 Retro 가 인테리어의 컨셉인듯. 지점이 두 곳이 있는데 더위에 지칠 때 정말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 에어컨인심 박한 호치민에서 그나마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카페이기도 하다.
다음 번엔 '호치민에서 이 거 한 번 먹어보실래요?' 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