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KI Jan 10. 2017

내가 사는 곳, 그리고 동네  

6개월도 더 지난 이사 이야기

작년 7월 한남동으로 이사를 왔다.


    6번째 이사였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참 부단히도 옮겨다녔다. 낙성대(2009)-서교동(2011)-합정동(2012)-상수동(2013)-청담동(2014)-한남동(2016).


    첫 자취는 대학교 4학년 마지막학기. 지금은 이유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온갖 핑계를 대며 기어이 학교 근처로 나와 살며 마지막 학기를 보냈고 졸업 후 다시 부모님 댁으로 돌아갔다. 다시 들어가는 건 원래 없던 계획이었으나 첫 직장이 부모님 댁에서 더 가까웠었다 보니 딱히 나와 살 핑계도 없었고 신입사원 월급에 독립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얌전히 집으로 복귀. 그리고 딱 1년 뒤에 다시 나와 당시 창업한 회사가 있던 홍대 근처에 자리잡았다. 창업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하던 그 때 부모님의 애정어린 관심과 걱정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와 혼자있고 싶은 욕구가 다시금 되살아났었고 퇴근길에 밀리는 버스, 지하철 안에서 몸을 구겨넣고 무표정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많은 이들 중 한 명이 되고싶지 않았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도 싫었었다.


    그렇게 2011년부터 다시 시작된 자취생활은 지금까지 다양한 동네를 옮겨 다니며 계속 되어오고 있다. 현재 사는 곳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살던 곳은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 모든 것이 편리했고 딱히 불만족스러울만한 것은 없었다. 다만 우아하고 세련된 듯 보이는 이면에 저렴한 욕망들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오는 동네 분위기를 느낄때면 불편했고 2년 정도 살다보니 또 다시 새로운 동네에서 살아보고픈 욕구가 커져 이사를 결심했다.


     회사와 그리 멀지 않은 강북에 위치해 있을 것, 좋은 카페와 빵집들이 지근거리에 있고 문화생활을 즐길만한 곳들이 있을 것 정도를 조건으로 두고 옮길 곳을 찾기 시작했다. 성수동 혹은 이태원 부근으로 후보지를 좁혔다가, 성수동은 생각보다 여자 혼자 살 만한 집들이 많지 않아 이태원 부근으로 확정하고 부동산들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간 몇 번의 집들을 거치면서 점점 더 내가 원하는 집이 어떤 곳인지 더 구체화할 수 있었기에 이번 이사할 때는 부동산에 내가 원하는 세 가지를 정확하게 요청하고 그 조건에 맞는 집들만 보기로 했다.


하나, 거실이 크고 넓을 것 : 혼자 사는 집이고 가진 예산에 한계가 있다 보니 사방에 창이 나있어서 볕이 잘 드는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어짜피 잠잘 때 빼곤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보내는데 이왕이면 거실이 넓고 창이 커서 볕이 잘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햇볕을 많이 쬐야 멜라토닌이 잘 형성되서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 구한 집의 거실이 아래 사진이다. Before and After.


둘, 화장실에 바닥난방이 들어와 건식사용이 가능하고 깨끗할 것 : 살다보니 화장실이 깨끗한 것이 심적안정감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되었다. 화장실이 춥고 지저분하면 아주 기본적인 생리욕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쓸데없이 마음이 가난해지더라. 화장실이 습식으로 밖에 사용할 수 없게 되면 발에 물 안 묻히겠다고 슬리퍼를 신게 되고 결국 슬리퍼에 곰팡이 생기고, 화장실 청소도 소홀하게 되서 결국 또 다시 화장실 들어가는 게 고역이 되고, 다시 마음이 가난해지고..

 

셋, 세대수가 적은 저층빌라일 것 : 1인 가구가 선택할 수 있는 주거건물은 다세대주택, 오피스텔, 그리고 아파트 중 하나 일텐데 내 경우엔 세대수가 많고 거대한 건물은 닭장같은 느낌이라 꺼려지는 터라 다세대주택에 한정해서 집을 보았다. 오피스텔에 딱 한 번 살았던 적이 있는데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만든 형태이다 보니 건물도, 근린시설도, 거주하는 사람들 마저도 여유가 없이 팍팍하고 어둡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었다. 5층 이하의 층수에, 층당 두세집 정도만 있는 저층빌라가 왜인지 더 사람사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선호한다.


    다행히 이 조건을 만족하는 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사 과정에서 이삿짐분실과 파손, 느슨한 수도시설로 인한 물바다 등 전에 없던 다양한 문제들은 일어나 예상치 못했던 비용 지출과 스트레스가 생겨 '내가 이러려고 이사를 강행했나' 후회 했었지만, 그것도 한 때고 살면서 더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집이다. 게다가 혼자 살기엔 좀 크고 둘이 살기엔 약간 부족한 구조와 크기의 애매한 집이라 오랜 기간 동안 입주자를 찾지 못했던 덕(?)에 비교적 낮은 월세에 입주할 수 있어서(청담동집보다 더 싸고 더 넓다!) 만족감이 더 큰 것 같다. 거실이 넓고 대로변에 있어서 찾기 어렵지 않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놀기도 좋다. 요리실력은 늘지 않았지만 다양한 배달 관련 서비스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이 곳에 산지도 7개월이 넘어간다. 그러고보니 시간 참 빠르네.


    동네 만족도도 매우 높다. 괜찮은 카페와 빵집들이 많아서 주말에 혼자놀기 좋고, 다양한 술집(집 바로 옆에 샴페인바와 맥주집, 그리고 위스키바가 있다! 엄청나!), 레스토랑들 덕에 또 재미있는 모임들을 하기에 좋다. 걸어서 20분 내외에 리움미술관, 블루스퀘어를 비롯한 많은 문화공간들이 있는데 실제 자주가지 않음에도 있다는 것 자체가 문화허영심을 충족시켜줘서 좋다.

 


장사가 잘 될까 싶지만 그래도 계속 자리를 지켜줬으면 좋겠는 오래된 가게들도 중간중간에 있어서 원하던 '동네느낌' 을 받을 수 있어 좋다 ㅎ


    

    나는 어느 동네에서, 어떤 집에서 살 것인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원하는 곳에서 살게 되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큰 편인 것 같다. 그래서 새로운 곳에 갈 때면 '여기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하고 자주 상상한다. 이사갈 동네를 고르고, 집을 알아보는 과정은 먼 곳으로 여행 떠날 준비를 할 때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2년에 한 번 정도씩은 동네를 옮겨다니며 살아보고 싶다. 한남동에 처음 올 때에도 2년 정도만 살자,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벌써 이사 온지 7개월이나 지났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깜짝 놀랐다. 아직 이 동네의 매력을 절반도 발견하지 못한 느낌인데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아마 이 곳에선 2년 보다는 좀 더 오래 머물게 되지 않을까.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