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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I Jan 07. 2017

제대로 된 거 먹어보니 다르드만

한남동 박식도락가의 회고록 

    시간이 가면서 예전엔 쳐다도 보지 않던 음식들이 좋아지는 경우들이 있다. 싫어하던 '음식'이라기보다는 싫어하던 '식재료' 라고 해야 맞겠다. 꺼리던 식재료들이 몇 가지 있었고, 그 식재료가 들어간 음식들을 아예 먹지 않거나 아니면 음식에서 그 재료만 쏙 빼고 먹어서 웬만하면 시키지 않는 음식들이 있었다. 닭가슴살, 굴, 가지, 목이버섯, 선지가 이런 식재료들인데 신기한 것은 그 전까지는 절대 입에도 안 대던 것들이 어느 순간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가 되어버렸다. 한때는 그렇게도 싫어하던 음식이 갑자기 좋아지게 돼버리면 적당히 좋아하는게 아니라 아주, 열렬하게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최근 몇 주 동안 찍은 사진을 보니 그 사이에도 가지, 목이버섯, 굴, 선지를 열심히도 먹었더라.


    

    아예 안 먹으면 안 먹었지 이왕 먹기로 했으니 그 동안 못 먹은 세월만큼 엄청 열심히 먹을 거다.. 이런 생각인지 좋아하게 된 순간부터는 매우 자주 찾아먹게 된다. 닭발, 온갖 간(liver), 오이,연어는 아직 이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싫어하는 식재료' 카테고리에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인데  앞으로 과연 좋아지게 될 날이 올지 궁금해진다.


    또 다른 종류의 '싫어했다가 좋아하게 된 음식' 들이 있다. 이 그룹에 속한 것들은 싫어하는 '식재료' 가 아니라 음식 그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인데, 절대로 안 먹는다기 보다는 배가 고픈데 딱히 먹을게 없으면 먹겠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굳이 찾아먹지는 않던, 메뉴판 볼 때도 눈길을 주지 않던 종류의 음식들이다. 


 우동, 칼국수, 돈까스, 토마토스파게티, 콩국수, 냉면, 생크림케이크, 메밀소바, 스시, 그리고 맥주


    지금 당장 밖에 나가도 1km 반경에 취급하는 상점,식당을 몇 개는 찾을 수 있을 법한 매우 대중적인 음식들. 가격대도 저렴한 편이라 주머니 가난한 중고등학생들도 쉽게 사먹을 수 있을 정도이고, 그래서 평생 한 번도 안 먹어보기는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음식들이다. 심지어 이들은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반조리식품으로 구입할 수 있다. 


    이 음식들을 꺼리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니 딱 하나였다. 비교적 어렸을 때 이 음식들을 처음 접했고, 그 때의 경험들이 좋지 않았고 그 기억이 어른이 되어서까지 남아 있어서 쉽사리 다시 손이 가지 않았던 것. 예를 들어 우동은 깊이가 없이 밍밍하거나 짠 국물에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두툼하고 젓가락질하기 힘든 면으로 기억하고 있었고 돈까스는 짜고 달기만 한 자극적인 소스에 가끔은 눅눅하기까지 한 튀김옷을 입은 퍽퍽한 돼지고기, 거기에 더해 맛도 없고 왜 주는지 모르겠는 양배추사라다가 떠오르는 음식이었다. 마트에서 팔던 생생우동, 고등학생 때 자주가던 건대입구 근처 '겨울나그네'(검색해보니 심지어 아직도 있다!)의 2천9백원짜리 돈까스같은 음식이 그 기억에 지배적인 역할을 했을터. 어느 때부터인가 이들은 '가격이 저렴하니깐 먹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절대 먹지 않았을 음식들' 로 분류되었고 왜인지 손길이 가지 않는 음식들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였다. 굳이 맛있는 곳을 골라 찾아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저 음식들은 맛이 없을 확률이 높았다. 우동, 칼국수, 돈까스, 토마토스파게티 같은 대중적인 음식들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재료 및 소스를 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거의 끓여 내기만 하면 되는 수준의 제품들도 많다. 즉 요리하는데 품이 적게 들다 보니 큰 노력이나 요리솜씨 없이도 식당을 창업하는 경우들이 많고 비숙련조리사들이 주방을 맡는 경우들도 생기게 된다. 그래서 그냥 무작위로 음식점을 골라 들어갔을 때 맛이 없을 확률이, 즉 저렴한 원가에 대량 생산된 재료들이 숙련되지 않는 요리사의 손을 거쳐 나온 음식일 확률이 높았던 거다. 그래서 나는 '복불복으로 낮은 확률에 기대하느니 차라리 시도조차 하지 않겠어' 라는 마음을 갖게된 것이고. 

*생크림케이크와 맥주는 왜 들어갔냐 싶겠지만 생크림케이크는 우유에서 추출한 진짜 생크림이 아니라 식물성크림, 그러니까 '모방크림'인 경우들이 많고, 맥주는 -많은 이들이 맛없음을 인정하는- 카스와 하이트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업장이 대부분이니 이 또한 '실패할 확률이 높은'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이후 '생각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맛집' 을 만나게 되면서 이 음식들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기분좋게 바꿀 수 있었다. 제대로 만들어 낸 음식을 접하고 새로운 경험을 몇 번 하게 되니 '아, 그동안 먹었던 우동과 칼국수가 전부가 아니었구나. 맛있을 수 있는 음식이었어' 하고 깨닫게 되고 꺼리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잘하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즐기게 되었다. 아래 사진들처럼. 딱 봐도 맛있어보인다. 아닌가? 




    생각해보니 이들 음식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건 비교적 모두 최근의 일인데 아마 몇 년 동안 거세게 불고 있는 미식열풍 덕에 괜찮은 대중음식점들을 찾기가 쉬워졌기 때문일거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이 모든 사람들의 일상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한 켠에는 스타쉐프, 미슐랭가이드 한국판 출간 등으로 위시되는 파인다이닝 열풍이, 또 한 켠에는 편의점과 배달앱, 그리고 간편식(HMR)의 가파른 성장을 견인한 집밥 열풍이 있었다. 그러나 체감하기에 미식열풍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곳은 대중음식점들인 것 같다. 매체들은 접근가능한 가격대에 양질의 음식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각 동네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온 소위 '가성비' 식당들을 앞다투어 발굴하여 소개했고, 몇몇 영향력있는 매체들에 소개된 식당들은 단골들에게 '다음주에 OO방송 나갈 예정이라 그 이후엔 몇 달간 미어터질 것이니 가능하면 그 전에 오셔라' 하고 미리 귀띔을 해야 할 정도로 이들 가성비식당에 대한 대중들의 환호는 엄청났다. 또한 TV뿐 아니라 잡지, 블로그, SNS, 그리고 다양한 미식관련 앱들을 통해 더 많은 대중식당들이 알려지면서 나같은 수동적인 소비자들까지도 움직이게 만든거다. 최근 평양냉면 광풍(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갑작스러운 거센 인기)은 TV, 잡지의 매체에서 소개된 이후 SNS 등을 통해 이슈가 확대재생산되면서 전에 없던 평양냉면 마니아들을 대거 양산하기도 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거 먹어보니 다르드만? 하기 시작했다. 반가운 깨달음이고 즐거운 변화다. 이번엔 어딜 가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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