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야 반말합시다

반말의 존댓말화는 가능한 것인가

by 박양
psy 3rd album.jpg 싸이 3집 커버


한 때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휘어잡은 싸이가 월드컵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던 2002년에 낸 3집 수록곡 중에 "반말합시다"라는 노래가 있었다. 제목이 다소 파격적인데 첫 가사도 역시나 상당히 저돌적이다.


"가뜩이나 세상 빡빡해 죽겠는데 여러분 반말합시다."


당시에는 나도 어린 학생이었기에 나이로 억눌림 당하는 상황이 더 익숙했던지라 가사가 속 시원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현재 나이가 훌쩍 들어버린 시점에서 이 글을 쓰기 위해 가사를 찾아서 읽어보니 재미있게도 은근히 불쾌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꼰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이는 그 어떤 노력과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축적되는 것인데도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우위에 서게 해주는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무기로서 유효하다.


대학생이던 시절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맞은편에 한 젊은 남녀가 서로에게 기대어 곤히 잠들어 있었다. 한 지하철 역에서 문이 열렸고 건장한 체격에 꽤나 건강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할머니와 탔는데 타자마자 평소 자주 해오던 듯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들고 있던 지팡이로 자고 있는 남자의 발을 두어 번 툭툭 건드리는 것이었다. 자고 있던 남자는 눈을 뜨더니 여자친구와 같이 벌떡 일어섰고 영역 정복에 성공한 할아버지는 위풍당당하게 할머니와 자리에 착석했다. 자느라 정신이 없어서였는지 정작 양보를 강요당한 커플들은 상황을 바로 수용한 듯 보였고 그것을 반대편에서 보고 있던 나는 화가 났었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는 사람을 툭툭 쳐서 쫓아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를 차지하는 무례함이 용인되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웃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 듣고 자란 우리 세대는 어렸을 때 상대하기 귀찮아서라도 연장자의 말도 안 되는 요구들을 대부분 수용해 주는 경향이 있었는데 개인의 신성한 영역과 권리 보호에 민감한 요즘 젊은 세대는 연장자의 공격을 참지 않는 듯하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노 시니어 존" 지정 카페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세대 갈등은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역사 속에서 항상 존재해 왔다지만 단순히 관점의 차이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접촉 자체를 차단한다는 것은 곧 특정 나이층에 속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나는 너무 지쳤으니 아예 그들을 내 세계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젊은 현대인들의 굳은 결심의 표현일 것이다. 또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응당 보여야 하는 행동이 굉장히 높은 피로도로 다가온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는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하는 곳인데 관점에 따른 세대 차이는 있을지언정 단순히 나이의 우위로 인해 빚는 갈등은 잘 없다.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만 맞는다면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는데 이는 싱가포르에서 사용되는 언어들, 즉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등이 뚜렷한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면 아저씨에 해당하는 uncle, 아주머니에 해당하는 auntie를 붙여서 부르는 것 외에 존댓말 반말 따로 없이 통일된 형식으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서로의 위치를 계속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친구를 대하듯이 이야기할 수 있는데 싱가포르 살면서 이런 면이 참 좋다. 어쩌다가 나이를 물어보는 것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것은 상대방을 알아가는 부가적인 정보일 뿐이고 계속 서로의 나이를 모르고 지내는 일도 허다하다. 남편의 직장만 봐도 나이가 20살이 어린 동료와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친구같이 지내고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직장 동료들과도 돈독한 우정을 가꿔나간다. (물론 넘보지 못할 정도로 높은 직장 상사와는 한계가 있는데 이는 어느 나라에서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상식이 필요한 부분이겠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즘 많은 대기업에서는 서로를 부를 때 '부장님, 차장님'과 같은 직급 대신 끝에 '프로님'과 같이 단일화된 명칭을 붙여서 부르도록 한다고 한다. 상사 입장에서는 조금 거부감이 들 수 있겠으나 시간이 지나 사회적 통념으로 적용이 되면 꽤 괜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댓말 반말은 한국에만 있는 문화가 아니다. 바로 옆에 있는 일본에도 있고 태국에도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 존댓말 반말 사용이 민감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나이 차이가 곧 서열과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한국어의 존대와 관련된 문법 자체가 유독 복잡하기도 하다. 단순히 끝에 "요"나 "습니다"를 붙인다고 무조건 예를 갖춘 것이 아니다. 친구에게 권유의 의도로 "밥 먹어."라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연장자에게 “밥 먹어요.”라고 하면 조금 곤란하다. 그뿐인가. 노년층을 대상으로 쓰는 표현들도 따로 있다. "밥을 먹으십니다."가 아니라 "진지를 잡수십니다", "나이를 먹으셔서 아프십니다."가 아니라 "연세가 드셔서 편찮으십니다."다. 말을 하면서 단어 하나하나 다 신경 쓰려니 머리가 아프다. 존대를 써야 하는 입장에서는 상대가 나보다 연장자임을 지속적으로 의식해야 하는 것이다. 나이에 따른 호칭과 존대의 문제만으로 머리가 아파지는데 여기에 또 직급이나 족보의 문제까지 더해지게 되면 더욱 골치가 아파진다.


언젠가 어렴풋이 들어본 유머가 있다. 한 젊은 외국인과 나이가 많은 한국인 사이에서 말싸움이 붙었는데 싸움이 과열되면서 한국인이 결정타로 한마디를 날렸다고 한다.


"How old are you!!!"


유머인지 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실화였다면 그 외국인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싸우다가 느닷없이 본인의 나이를 묻는다니. 존대와 반말, 그리고 나이에 따른 서열문화가 생소한 외국인들은 이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K-콘텐츠에서 어법과 관련된 대사가 나올 때 (예: "왜 반말이냐?") 자막에 어떻게 번역되어서 나오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는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을 두지 않고 하나의 형식으로 통일해서 언어를 사용한다면 세대 갈등 해소에 전례 없는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한 국가의 언어를 통째로 리뉴얼하는 것은 일단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힘들겠지만 먼 미래에 가능해진다면 다음과 같은 방식이 좋을 것 같다. 일단 모두가 서로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상상이 되지 않고 고정관념인지 몰라도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아예 반말을 없애고 존댓말을 하나의 형식으로 통일해서 학교와 가정에서 가르친다. "진지", "연세" 이런 노년층 대상 표현도 다 없애고 "당신", "그쪽", "고객님" 이런 표현도 다 "너"로 통일한다. 영어권에서 상대방을 무조건 "you"라고 하듯이 말이다. 상대방에 대한 예는 갖추되 언어 자체는 중립의 형태인 것이다.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는 격식에 맞는 표현이 따로 있어야 하겠다. 편한 사이에서는 존댓말을 쓰되 표현 자체는 자유롭게 해도 된다. 예를 들면 "어유~ 넌 이런 것도 몰라요?" 이런 식으로. 즉, 반말의 존댓말화다. 지금 들으면 웃기지만 먼 미래에는 정말 가능할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옛날에는 반말 존댓말이 따로 있어서 그것 때문에 사람들끼리 싸우기도 했단다."라며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제로 그런 사회가 도래해서 지금 이 브런치글이 조지오웰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먼 훗날 각광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때쯤이면 내가 세상에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이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언어의 형태가 서로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보다 소통을 저해하는 면이 더 크다면 이는 참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건 내가 사랑하는 한국어가 우리나라 사회의 세대 갈등을 해소하면서 한국어 고유의 미를 퇴색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싸이의 "반말합시다"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가사로 이 글을 끝맺어본다.


말 놓고 기분 좋고 Everybody 친구 먹자

야 말고 어이 말고 불러봐 내 이름 석 자

말 놓고 기분 좋고 Everybody 친구 먹자

야 말고 어이 말고 불러봐 내 이름 석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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