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외로움
재훈과 이혼한 건 출산 6개월 후였다.
협의이혼.
재훈은 쉽게 동의했다.
“양육비는 줄게.”
“필요 없어요.”
“은서씨.”
“연락하지 마세요. 아이한테도.”
재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관심 없었으니까.
처음부터.
나는 은서다.
서른일곱.
변호사.
이혼녀.
아이 엄마.
혼자.
회사로 복귀했다.
출산휴가 끝나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냈다.
엄마가 도와줬다.
“은서야. 괜찮겠어?”
“괜찮아.”
“아이 맡기고 일하는 거. 힘들 텐데.”
“할 수 있어.”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봤다.
“은서야. 너 많이 지쳐 보여.”
“괜찮아. 진짜.”
거짓말이었다.
지쳤다.
너무.
출근 첫날.
사람들이 봤다.
이혼녀.
미혼모.
아니, 이제는 싱글맘.
속삭임이 들렸다.
“결혼했다가 이혼했대.”
“얼마나 살았대?”
“1년도 안 됐대.”
“애는?”
“키운대. 혼자.”
“힘들겠다.”
나는 들은 척하지 않았다.
익숙했으니까.
이미.
일했다.
밤샘 작업.
주말 출근.
아이는 엄마가 봐줬다.
“은서야.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아이가 엄마를 찾아.”
“…알아.”
“주말에라도 같이 있어줘.”
“응. 그럴게.”
하지만 나는 계속 일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아이는 자랐다.
돌이 지났다.
걷기 시작했다.
“엄마.”
첫 말.
나는 울었다.
“응. 엄마야.”
아이가 웃었다.
예뻤다.
내 딸.
하지만.
죄책감이 들었다.
이 아이를.
잘못된 이유로 낳았다는.
민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은서야. 요즘 어때?”
“그냥 그래.”
“일은?”
“계속하고 있어.”
“아이는?”
“잘 크고 있어.”
“재훈이는?”
“이혼했어.”
“…그래. 들었어.”
민지는 한참 침묵했다.
“은서야.”
“응.”
“괜찮아?”
“괜찮아.”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나는 말했다.
“정말 괜찮아. 익숙해졌어.”
“뭐가?”
“혼자 사는 거.”
아이가 두 돌이 됐다.
어린이집 생일 파티.
나는 갔다.
다른 엄마들이 있었다.
남편들도.
“안녕하세요.”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남편분은요?”
“…혼자 키워요.”
“아. 그러시구나.”
그 엄마는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
동정.
안됐다는.
나는 익숙했다.
이미.
집에 돌아왔다.
아이를 재웠다.
거실에 혼자 앉았다.
TV를 켰다.
하지만 보지 않았다.
혼자.
언제나.
핸드폰을 봤다.
연락처.
도현.
차단했던.
재훈.
삭제했던.
둘 다 없었다.
혼자.
아이가 세 돌이 됐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말했다.
“어머니. 요즘 OO이가 자꾸 아빠 이야기 해요.”
“…네.”
“다른 친구들은 아빠가 데리러 오기도 하는데, OO이는 항상 어머니나 할머니가 오시잖아요.”
“네.”
“그게 좀 궁금한가봐요.”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집에서 한번 이야기 나눠보시는 게 어떨까요?”
“알겠습니다.”
⸻
그날 밤.
아이를 재우며.
아이가 물었다.
“엄마. 나는 아빠 없어?”
가슴이 아팠다.
“…아빠는 멀리 계셔.”
“왜?”
“바빠서.”
“다른 친구들 아빠는 안 바빠?”
“…”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는 잠들었다.
나는 아이를 봤다.
미안해.
아빠 없게 해서.
엄마가 잘못 선택해서.
회사에서.
팀장이 불렀다.
“은서 변호사.”
“네.”
“요즘 실적이 좀 떨어지는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아이 때문에 힘든 거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닙니다.”
“솔직하게 말해요. 싱글맘이 일하기 힘들죠?”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아 보이는데.”
팀장이 말했다.
“은서 변호사. 커리어도 중요하지만, 아이도 중요하잖아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생각해봐요. 지금 일 계속하는 게 맞는지.”
집에 돌아왔다.
엄마가 아이를 봐주고 있었다.
“왔어?”
“응.”
“오늘 늦었네.”
“미팅 있었어.”
“밥은 먹었어?”
“아니.”
엄마가 밥을 차려줬다.
아이는 잤다.
“은서야.”
“응.”
“너 요즘 안 좋아 보여.”
“괜찮아.”
“거짓말. 살 많이 빠졌어.”
엄마가 말했다.
“일 그만둘 생각 없어?”
“왜?”
“힘들어 보여서.”
“괜찮아. 할 수 있어.”
“은서야.”
엄마가 내 손을 잡았다.
“너 지금 무리하고 있어.”
“아니야.”
“맞아. 아이도 엄마가 필요한데, 넌 계속 일만 해.”
“돈 벌어야 하잖아.”
“돈보다 중요한 게 있어.”
엄마가 말했다.
“아이야. 너 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맞는 말이었으니까.
아이가 네 돌이 됐다.
유치원에 들어갔다.
첫날.
나는 아이를 데려다줬다.
“엄마. 무서워.”
“괜찮아. 선생님 계셔.”
“엄마도 같이 있어줘.”
“엄마는 회사 가야 돼.”
“싫어.”
아이가 울었다.
나는 아이를 안았다.
“OO아. 엄마 일해야 돼. 알지?”
“…응.”
“착하지. 오후에 데리러 올게.”
아이를 두고 나왔다.
뒤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찢어졌다.
회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이 생각만 났다.
울던 얼굴.
“엄마도 같이 있어줘.”
오후 3시.
조퇴 신청했다.
“팀장님. 죄송한데 오늘 조퇴 가능할까요?”
“무슨 일이에요?”
“아이가…”
“또요?”
팀장의 표정이 굳었다.
“은서 변호사. 이번 달에만 벌써 세 번째예요.”
“죄송합니다.”
“아이 때문에 계속 이러면 곤란한데.”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해요.”
유치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선생님이 말했다.
“어머니. 일찍 오셨네요.”
“네. 일찍 끝나서요.”
“OO이가 오늘 많이 울었어요.”
“…네.”
“엄마 찾으면서요.”
선생님이 말했다.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아이를 안았다.
“엄마!”
“응. 엄마 왔어.”
아이가 울었다.
내 품에서.
나도 울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집.
아이를 재웠다.
거실에 혼자 앉았다.
힘들다.
너무.
일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고.
혼자인 게 힘들고.
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왜 이렇게 힘든 거지.
능력도 있었고.
욕망도 있었고.
다 가지고 싶었는데.
왜 하나도 없지.
성공도.
사랑도.
가정도.
다 없어.
아이만 있어.
그것도 혼자 키워야 하는.
민지가 찾아왔다.
“은서야.”
“왜 왔어?”
“보고 싶어서.”
민지는 들어왔다.
우리는 소파에 앉았다.
“요즘 어때?”
“힘들어.”
“많이?”
“많이.”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일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고.”
“회사에서 뭐래?”
“눈치 줘. 아이 때문에 자꾸 조퇴하고 결근한다고.”
“그만둘 생각은?”
“있어. 근데 돈 벌어야 하잖아.”
민지는 나를 봤다.
“은서야. 너 너무 힘들어 보여.”
“알아.”
“도움 필요하면 말해.”
“고마워. 근데 괜찮아.”
거짓말이었다.
괜찮지 않았다.
전혀.
아이가 다섯 돌이 됐다.
유치원 발표회.
나는 갔다.
다른 부모들이 있었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나는 혼자였다.
아이가 무대에 올라갔다.
노래를 불렀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를 보며 웃었다.
내 아이는.
나만 봤다.
아빠가 없으니까.
발표가 끝나고.
아이가 달려왔다.
“엄마! 잘했어?”
“응. 잘했어.”
“아빠는 안 왔어?”
가슴이 아팠다.
“…아빠는 바빠서 못 왔어.”
“맨날 바빠.”
아이가 말했다.
“친구들 아빠는 안 바쁜데.”
나는 아이를 안았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집.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 혼자 앉았다.
TV를 켰다.
드라마가 나왔다.
행복한 가족.
엄마, 아빠, 아이.
웃고 있는.
나는 TV를 껐다.
볼 수 없었다.
너무 아파서.
나는 생각했다.
5년.
아이를 낳은 지 5년.
*재훈과 이혼한 지 4년 반.
혼자 키우고 있다.
일하면서.
힘들다.
너무.
하지만 할 수밖에 없다.
이게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
아니.
선택이 아니었다.
반복이었다.
패턴.
그리고 그 결과.
지금.
혼자.
아이와.
익숙한 외로움 속에서.
엄마가 전화했다.
“은서야.”
“응.”
“OO이 잘 자?”
“응. 방금 재웠어.”
“너는?”
“나는 괜찮아.”
“거짓말.”
엄마가 말했다.
“목소리 들으면 알아. 너 많이 지쳐 있어.”
“…응.”
“은서야. 너무 무리하지 마.”
“어떻게 안 무리해. 혼자 키우는데.”
“엄마가 도와줄게.”
“이미 많이 도와주고 있잖아.”
“그래도.”
엄마가 말했다.
“은서야. 힘들면 말해. 응?”
“응. 고마워.”
전화를 끊었다.
나는 혼자 남았다.
언제나처럼.
창밖을 봤다.
밤.
불 켜진 아파트들.
저 안에.
가족들이 있겠지.
함께 저녁 먹고.
TV 보고.
웃고.
나는.
혼자.
아이와 둘이.
그것도 아이 재우고 나면.
완전히 혼자.
나는 눈물을 닦았다.
울면 안 돼.
내일 또 일해야 하니까.
아이 돌봐야 하니까.
버텨야 하니까.
침대에 누웠다.
옆에 아이가 자고 있었다.
작은 숨소리.
나는 아이를 봤다.
미안해.
엄마가 너한테.
좋은 삶 못 줘서.
아빠 없게 해서.
혼자 키우게 돼서.
다.
미안해.
아이는 잤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나는 천장을 봤다.
이게 내 삶이다.
능력 있고 욕망 있었지만.
다 잃었다.
성공도.
사랑도.
가정도.
아이만 남았다.
혼자 키워야 하는.
그리고 나는.
매일.
버틴다.
익숙한 외로움 속에서.
끝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