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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끄로 Jan 08. 2024

프롤로그

이런 시베리아 횡단열차 같은

우리 시베리아 횡단열차 탈래?


 여행과 모험을 동경했던 10대의 초초는 '지구의 절반을 횡단해서 유럽에 갈 수 있는 열차‘를 발견했다. 유레카! 그래서 내가 버킷리스트에 처음 쓴 것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기'. 하지만 그 소녀는 건축학도가 되어 밤샘과제에 시달렸다. 버킷리스트는 잠시 서랍에 넣어둔 채. 사람답지 않은 생활을 몇 년 정도 한 후, 휴학을 했다. 시간은 많았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여행 자금도 꽤 있었다. 그렇게 잠시 접어둔 버킷리스트를 펼쳐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기’에 줄을 그었다.


 오랜 소원이 막상 현실이 된다고 생각하니 두려워졌다. 출국을 1달 정도 남기고 횡단열차 관련 정보와 영상을 찾아봤다. 혼자 해외여행은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잘할 수 있을까?, 옆자리에 이상한 사람이 타면 어쩌지? 와 같은 걱정들이 쏟아졌다. 막상 현실에 닥치면 잘하겠지만, 6시간에 한 번씩은 무서워할 게 분명했다.

‘부모님도 많이 걱정하실 것 같으니, 같이 갈 친구를 찾아보자. 5월이면 휴학생들만 가능하니까…’

휴학 중인 솜이가 생각났다. 솜이는 중학교 때 만난 친구이자, 나의 첫 해외여행을 이끌어주었던 친구이다. 3년 전에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각자의 삶에 집중하느라 자주 연락하지 않았지만,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이기 때문에 일단 물어보기로 했다.


“솜아, 우리 시베리아 횡단열차 탈래?”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솜이에게 가겠다는 답장이 왔다.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본 솜이었기에 아주 든든한 여행메이트가 생긴 기분이었다. 나의 첫 여행이었던 라오스 이후에 다녀온 장기여행들로 레벨 업된 내 모습을 솜이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이 여행을 가기로 한 순간부터 비행기, 기차, 숙소 예약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3일 동안 횡단열차를 타고 중간지점인 이르쿠츠크에서 하룻밤 묵으며 바이칼호수를 보고 난 후, 다시 열차를 타고 종착지인 모스크바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그 후 우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여행을 마치고 프라하로 넘어간 다음, 나는 서유럽으로 솜이는 동유럽으로 빠지기로 했다. 1달의 절반은 친구와 절반은 혼자서 여행할 수 있는 최적의 일정이었다. 여행 정보를 수집하고 일정을 짜면서 나의 기대감은 점점 커져갔다.


‘ 나 정말 시베리아횡단열차 타는 거야?!!’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뭔데?  


 성수동, 삐까뻔쩍한 건물 지하 골방.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늘은 평화롭기를 바라며 키보드나 두드리고 있었다. 초초에게서 카톡이 왔다. 이번에 퇴사를 한다고. 그즈음의 나는 퇴사를 할까, 계속 커리어를 쌓을까 고민을 하던 찰나였다. 초초는 퇴사 후 오랜 버킷리스트였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다고 했다. 너도 갈래? 난 덥석 물었다. 가겠다고. 초초는 J, 나는 자아 없는 P. 여행하기 최적의 조합 아닌가. 


 근데,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뭔데?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뭔지도 모르고 냅다 수락했다. 그저 초초랑 여행 가면 편하고 재밌을 것 같았다. 계획은 초초가 세울 테고, 나는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 그리고 가이드에 빙의해 건축물 얘기도 해줄 초초니까 이득이잖아! 스물하나, 초초의 첫 여행을 내가 이끌었고 스물넷, 나의 첫 러시아를 초초가 이끈다. 


 퇴사를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유가 필요했다. 나 스스로를 납득시킬 이유와 퇴사를 해야 하는 정확한 날짜가 필요했다. 당시에는 그게 바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였다. 새로운 도전, 넓은 세상으로의 모험. 그래서 난 겁 없이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만 사고 퇴사를 선언했다. (그렇다. 블라디보스토크, 원웨이-)

 선택해야 할 것들이 끝도 없이 늘어났다. 러시아 여행 루트, 여행 기간, 숙소, 경비, 교통 등 열차를 타고 내리는 게 전부가 아니란 걸 망각했다. 선택을 힘들어하는 나에게 고역이 따로 없었다. 다행인 건 초초 머리엔 다 계획이 있었다는 것. 초초가 계획을 짜고 나에게 해야 할 것들을 브리핑해주면, 나는 그것만 하면 됐다. 문제는 횡단열차 이후 나의 행선지를 정하지 못했다는 거였다. 초초는 베를린, 런던, 파리를 돌기로 결정했고, 서유럽을 이미 한 번 다녀온 나는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스크바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은 아쉬웠다. 몇 날 며칠 골방에서 고민한 끝에 가보지 않은 동유럽을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여행을 가겠다고 결정하면 내가 원하는 날짜, 시간에 맞춰 여행지에 도착해 있었으면 좋겠다. 맘 편히 몸 누일 안전한 숙소도 행선지에 도착하면 짠하고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당연히 모든 건 내가 해야 한다. 심지어 여권 만료일도 다가와 새로 발급받아야 했다. 시간이 덩어리로 흐르나 보다. 어느새 5년이 흘러 여권 갱신을 해야 한다니. 어쩌겠나, 시간은 흘렀고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도 예약했으니 할 일은 해야지. 누가 보면 강제로 끌려가는 사람인 것처럼 게으르게, 더디게 하나씩 준비했다.


 이때부터였을까, 여행을 떠날 때면 머리를 싹둑 자르기 시작한 게. 원래도 길지 않았던 나의 단발머리를 더 짧게 자르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랐다. 그리고, 이땐 몰랐다. 이 선택이 내 인생을 얼마나 많이 바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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