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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끄로 Jan 09. 2024

나의 세 번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솜에게


 3개월 만에 다시 온 블라디보스토크는 완전한 봄이었어. 바닷가에는 파도가 넘실 댔고, 길가에 쌓인 하얀 눈들은 푸른 풀들로 바뀌었어. 한번 가봤던 도시를 다시 여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꽤 괜찮은 것 같아. 계절이 달라서 그런가? 익숙하지만 다른 도시에 온 기분이야. 1주일 동안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했었는데도 안 가본 데가 있더라. 우리가 오후에 방문했던 그 갤러리. 평일 오후라 그런지 아무도 없어서 좋았어. 갤러리를 통째로 대관한 기분! 이게 바로 비수기 여행의 묘미 아니겠니! 나는 아무도 없는 갤러리에서 혼자 작품을 보는 걸 좋아해. 사실 작품은 잘 몰라서 공간만 봐. 내가 건축학과 학생이긴 한가 봐. 오늘 간 곳은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 같은데 전시관 벽의 색이 인상적이더라. 건축적인 상식을 말해주고 싶지만 아는 게 없다^^ 미안! 전시회사에서 일했던 솜아 넌 어땠니?

 하루 안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속성으로 가이드해주고 싶어서 계획을 철저하게 짰어. 저번 여행 때 블라디보스토크의 지리를 외울 정도로 쏘다녔거든. 그때 가본 식당 중에 맛집들만 선별해서 너를 데려갔지. 점심에 간 ‘우후 뜨 블린’에서 먹은 팬케이크 정말 맛있지 않았어? 내 인생 팬케이크야.

 ‘탐욕버거’도 맛있었지?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맛이지만, 최적의 동선이어서 선택했지. 라텍스 장갑을 끼고 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 너도 좋아할 것 같았어. 포크랑 나이프로 잘라먹으면 다 뭉개지잖아. 이거 진짜 화난다고! 3개월 만에 다시 온 탐욕버거는 테이블마다 주문벨도 생기고 인테리어도 바뀌어있어서 당황했어. 내가 3개월이 아니라 1년 만에 왔나 싶더라고.


 사실 너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이곳 화장실을 보여주고 싶어서야. 이 화장실이 응아 하기에 좋거든. 방음도 잘되고 조명도 어두우면서 깔끔해. 무엇보다 세면대의 수도꼭지 아래에 바로 핸드드라이어가 나와. 세면대에 물이 남아있으면 나에게 다 튀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그래서 너한테 굳이 손 씻고 오라고 한 거야.) 다이슨 핸드드라이어라 그런지 바람이 아주 강력해. 아주 마음에 들어. 나는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햄버거집에서 응아를 하는 루틴이 있어. 햄버거처럼 기름진 걸 먹으면 대장이 활발해지더라고. 그리고 어느 나라든 햄버거가게의  화장실 청결도는 평균 이상은 되거든. 그리고 햄버거집을 이용하지 못한 날은 나의 전공을 살려서 최신 건축물의 깨끗한 화장실을 찾아내. 내가 3년 동안 건축답사 동아리에서 배운 것은 화장실 찾기인 것 같아. 이번 여행에서 화장실 찾기 걱정은 마렴. 나만 따라와. 


 아 그리고 너도 나중에 시간 되면 겨울에 다시 와봐. 얼어버린 바다 위를 걷는 경험은 정말 짜릿하다고! 바다가 갈라지는 짜릿한 상상 하며 걷다 보면 발이 짜릿하게 시리다고! 너도 꽤 좋아할 것 같아. 나는 이번이 세 번째 러시아라서 이만 하면 충분해.

 나도 러시아에 이렇게 자주 올지 몰랐어. 나의 첫 러시아는 야쿠츠크였어. 3년 전에 ‘글쓰기’ 수업 교수님이 수업 끝나고 남으라는 거야. 여름방학에 시베리아에서 대학생 연합 포럼이 열린다는데 건축학과 학생을 추천하려 한대. 나는 시베리아라는 말만 듣고 바로 가겠다고 했지. 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타는 줄 알았거든! 아쉽게도 야쿠츠크공항에서 버스 타고 바로 도착하더라. 야쿠츠크는 시베리아에 있다고 보면 되는데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래! 물론 나는 여름에 가서 추운 걸 몰랐어.


 첫 러시아의 기억이 좋아서 이렇게 세 번이나 왔나 봐. 무엇보다 야쿠츠크에서 만난 사람들이 따뜻했어서 이번 여행도 기대된다! 러시아 사람들이 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알고 보면 정이 많거든! 너도 그러니까 러시아어로 안녕하세요 빨리 외워. ‘즈뜨라스부이제!’야. 그리고 작별인사는 ‘다 쓰비다니야!’ 그리고 반말로는 '빱까빱까' 라고 하면 돼!


 몇 시간 뒤면 드디어 횡단열차를 타게 된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함께 이뤄줘서 고마워! 그리고 걱정 마! 3년 전에 키릴문자 읽는 법 배웠으니까 표지판 같은 거 읽을 수 있어! 아 근데 뜻은 몰라. 대충 영어랑 비슷하지 않을까? 아님 파파고 쓰지 뭐! 아무튼 이번 여행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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