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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Jan 05. 2017

북촌 어둠속의 대화

일 년이 다되어가는 데 이제야 씀


어쩌면 어둡기 때문에, 더 자유롭다


작년 봄, 전시회를 자주, 같이 가는 친구와 또 하나의 전시를 보러 갔었다. 보통 티켓을 구매하기 전에 전시회에 대한 사전정보를 어느 정도 보고 가는데 이번에는 봐도 통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설렘과 동시에 약간의 불안감도 있었다. 여타 전시와는 다르게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어떤 물건을 사거나 어떤 곳을 갈 때, 가격대비 질이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앞선다. 현실적인 태도지만 어찌보면 시작도 하기 전에 경계심을 품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는 찜찜한 기대감을 가지고 북촌으로 향했다. 

전시회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든 소지품들을 보관함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갔다온 흔적이라고는 티켓밖에 없다. 

어둠속의 대화는 100분동안 진행되며, 15분 간격으로 예매가 가능하고 한 회차당 최소 1명부터 최대 8명까지 입장할 수 있다. 우리는 한 커플과 같이 총 4명이서 입장했다. 


보통 공연이나 전시에 대해 말할 때,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이 전시는 말할 수 없다. 단지 보고난 후의 감정만이 남을 뿐이다. 나에게 남은 최후의 감정은 경이로움과 회의감이다.

 

시각적으로 완벽히 차단된 공간 속으로의 여행은 처음에 무척이나 두렵다. 내 앞에 어떤 장애물이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모른 채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천천히, 친구에게 의지해서 걷는 것이다. 하지만, 안 보이는 모든 것에서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시각 외에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모두 제 역할을 다해주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정말이지 새로운 경험이다. 그리고 동시에 일상 속에서 단편적인 감각에만 의존한 채 살아왔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경이로움이다. 마치 세상을 향한 새로운 눈을 뜨는 것이다. 혹은 물 속에서 눈을 뜨는 것.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또 한편으로는, 깜깜한 와중에도 수많은 편견과 감정들을 마주하게 된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모든 것이 새로운데 나만 빛바랜 상태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랄까. 회의감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회의감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가진 모든 편견들에 대한 것이다. 사소하지만 치밀한, 그리고 무서운 머릿 속 울타리들이 어떻게 견고하게 자리잡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전시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그 알 수 없는 먹먹함은 일년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여타의 전시회들이랑은 확연히 다르다. 더 깊고 묵직한 감정을 선사한다. 


 북촌, 어둠속의 대화는 3월 31일까지만 진행되니까 그 전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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