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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Feb 21. 2019

영원한 부재를 감각하는 일

삶 전체에 드리운 회백색 그림자

누군가, 그것도 퍽 다정했던 누군가의 영원한 부재. 여태껏 감각해 본 적 없는 삶의 형태인 동시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이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저릿하고 수시로 내 생활 전반에 침투한다.


음, 온 생에 걸쳐 거치지 않는 거뭇한 그림자가 드리운 느낌이라고 말하면 우리는 조금 같은 마음일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는 세상 아래에서 헤어지는 것과 별세계로 떠나버린 것은 과연 상실감의 깊이가 다르다. 꿈에서 만나면 마냥 반갑다가, 잠에서 깨어나면 그 하루가 온통 비참함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빈 자리를 의식적으로 되뇌이지 않으면 한없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고통 속에서 나는 계속 고통스럽게 그 아이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 시간 속에 한 가지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의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마음껏 슬퍼한 끝에 마침내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 밖에는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이 다음에 다가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약 10년 전 내가 너무 어려 엄마에게 조그만 힘도 되어주지 못하던 때,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병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나보다 더 살붙게 지내던 사람의 죽음의 경험이 있는 엄마가 지금 가장 힘이 된다. 그래서 자주 엄마에게 묻는다.


"대체 언제쯤 나아져?"

"시간에 맡기는 수밖에 없어. 별 도리가 없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항상 같다. 매번 똑같은 대답이 돌아올 거란 걸 잘 알면서도, 어쩌면 오늘은, 좀 더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얕은 기대감에 또 한번 보채듯 묻는다.


언젠가 한번은, 내일이 없는 양 놀다가 문득 현실감각이 돌아와 막차를 타러 뛰어간 적이 있다. 카카오 버스를 3초에 한번씩 새로고침하며 조그마한 막차 아이콘이 다가오는 걸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게 갑자기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황망했다. 요즘 나는 어쩌면 그 막차에 영원히 젊은 얼굴의 그 친구가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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