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버 Jan 04. 2019

무심하고 소란한 출퇴근길

매일의 단상

산맥처럼 둘러싼 아파트 단지를 잰걸음으로 넘어가면, 내 하루는 시작된다.

주황빛 햇살

미세먼지인지 실안개인지 모를 희뿌연 사위를 둘러보면 아직 겨울방학을 하지 않은 듯한 앳되고 해사한 얼굴의 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하나같이 형형색색의 신발주머니를 발로 차거나 손으로 흔들며 털레털레 걷는다.


도로 한 가운데에서 무감한 표정으로 교통 정리를 하고 있는 수위아저씨와 네댓명의 녹색어머니들 뒤로 깨끗하고 자신있는 미래를 약속하는 듯한 동요가 울려퍼진다.


소란한 작은 세상을 지나쳐 골목으로 들어가면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있다. 그곳엔 모텔들과 순대국집, 카센터들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다. 고소하고 짭짜름한 순대국 냄새가 끝날 무렵, 모텔 주차장 앞엔 한 남자가 피로한 얼굴로 담배를 빨고 있다. 카센터엔 남색과 회색이 이질적으로 섞인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일렬종대로, 하지만 부산하게 서있다. 이어 오래된 국민체조 노래가 오래된 스피커 밖으로 나오고, 그들은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허위허위 돌린다.

역 앞

패딩 주머니에 손을 푹 꽂은 채 다양한 군상들을 구경하다보면 어느 새 지하철역에 도착한다. 플랫폼 6-1에 약간 빗나가게 열차가 도착하고, 내리는 사람들 뒤로 무리들이 그림자처럼 있다. 살아있는 송장이라고 해도 무방한 얼굴로 그렇게 무심하게, 서있거나 앉아있다. 나도 그 속에 끼어 손잡이든 철봉이든 보이는 대로 잡고 서있다가 손이 차갑고 노래질 때쯤 공덕역에 내린다.


기력이 모두 쇠한 듯 보였던 노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쪽으로 내달리는 모습을 보며 사람이란 뭘까 생각해본다. 꽤 긴 환승구간을 지나, 한층 분주해진 그림자들이 들어앉아있는 5호선으로 갈아탄다. 충정로, 서대문, 광화문 등을 떠나보내며 한껏 멋을 부린 노인들, 무기력한 젊은이들과 함께 종로3가에서 내린다.

낙원상가 밑

아침부터 코를 찌르는 달큰한 갈비냄새를 맡으며 5번 출구로 나온다. 낙원상가 밑에서 취식하는 노숙자들을 애써 못 본 척 하며 나는 인사동 방향으로, 내 또래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학원이 밀집한 종각역 방향으로 흩어진다.

한갓진 인사동 거리의 아침

누가 오긴 오겠지? 싶은 갤러리와 이제 막 셔터를 올리고 물건을 내놓는 필방, 그리고 아직 아침이 오지 않은 조악한 기념품점들이 주욱 늘어서있다. 마침내 나도 일개 알바생의 마음으로 갈아입고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되돌리면, 거짓말처럼, 퇴근길의 풍경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넌 너무 감성적이야'라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