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버 Jan 01. 2019

'넌 너무 감성적이야'라는 말

'감성적이네', '문학소녀', '무슨 그런 말을 써?'


살아오는 동안 하도 많이 들어서 이윽고 귓바퀴에 새겨져버린 듯한 말들.


처음엔 대수롭지 않다가도, 종국엔 마음을 지저분하게 더럽힌다. 그것들을 발음하는 입과 경계심 어린 눈에는 껄끄러운 감정들이 어쩔 수 없이, 하지만 분명하게 배어나온다. 나는 또 그것마저 눈치채고 마는 것이다.


너는 무슨 책에 나올 법한 단어를 쓰냐고,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고 하는 얘기도 숱하게 고막을 때렸다.


본인이 모르는 단어가 갑자기 튀어나와 당황스러워서 반사적으로 내뱉는 방어기제일까. 아니면 느껴보지 못한 혹은 느꼈지만 지금껏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버거워서일까.


나는 스스로를 단죄하듯, 속을 긁어내는 말의 연유를 찾기도 했다.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으로 넘기는 시간이 많았지만, 유독 날카롭게 할퀴고 지나가 자욱이 남는 때가 있다.

말에는 뉘앙스라는 게 있는데,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고유의 밀도와 채도, 명도, 어감은 전혀 다르다.


생소한 것과 생경한 것은 다르고, 힘든 것과 고된 것도 다르며 붉은 것과 불그죽죽한 것 또한 다르다. 틀린 게 아니고 다르다.


지금의 정서에 가장 적확하다고 느껴지는, 그와 유사한 말로 대체될 수 없는 단어들이 내는 빛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내 마음엔 언어로 만든 팔레트가 있어 매순간 다른 색감의 물감을 붓에 묻혀 혀에 그리는 순간이 좋다.


그래서 이 단어를 쓰면 친구들이 무슨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할 지 뻔히 알면서도, 나는 끝끝내 쓰고야 만다.


언어에 섬세한 사람에게 너는 왜 섬세하느냐고, 뭐 그렇게까지 섬세하느냐고 물으면 할말을 잃는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그저 사물과 사람의 결을 좀 더 예리하게 보고 듣고, 쓰고 그리고 느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일에도 노력은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