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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Oct 28. 2020

자취하고 난 뒤 보이는 엄마의 얼굴

잔상처럼 아른거리는 엄마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사다 놓고 한 번도 안 쓴 굴소스가 생각났다. 이마트에 갔다가 투명한 입마개를 끼고 붉은 배색의 머리띠를 한 직원 분이 작게 오린 종이컵에 담아주는 굴소스 버섯볶음을 먹고 영업을 당해버린, 바로 그 굴소스. 이걸 쓰려면 일단 버섯을 사야겠지, 버섯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양파랑 대파, 다진 마늘을 샀다. 집에 들어와 후다닥 씻고 밀린 빨래를 돌려놓고 세탁기가 요란하게 돌아가는 소리를 음악 삼아 양파와 당근, 대파를 송송 썰었다. 눈이 따가워지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손등으로 찌걱찌걱 덜어냈다. 내 얼굴은 엄마의 얼굴처럼 일그러졌다. '어우 매워' 하면서 콧물을 조금 들이키며 말간 눈물을 흘리는 얼굴이었다.


얼마 안 되는 재료를 준비하는 데만 해도 이래저래 30분은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래, 생각해보면 엄마는 집 안에서 항상 서 있었어. 부엌에서 타닥타닥, 보글보글, 탁탁 탁탁. 몇 가지 팔 동작만 반복하며 교통정리하는 경찰처럼 그렇게 서 있었지. 그러다가 한 번은, 뭐 그리 바쁜지 다용도실에 들어갔다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베란다로 갔다가 하면서 잰걸음으로 집안을 오갔다. 여전히 엄마의 얼굴은 어딘가 몰입해 있었고 피로해 보였다.


기름을 두른 팬 위에서 어느새 버섯도 풀이 죽고 당근과 양파도 익어갔다.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굴소스와 다진 마늘, 마지막으로 대파까지 넣었다. 그럴싸한 모양새였다.


요리를 다 하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 순간, 우리 집이 생각났다. 엄마와 아빠, 오빠, 그리고 내가 살던 그 집 말이다. 이게 바로 집 냄새였구나. 양파와 대파, 다진 마늘이 한 데 어우러져 달큼하면서도 알싸하고 눅눅한 냄새였구나. 그리고 이 냄새는 엄마 품에서 나는 것이기도 했다.


잔상처럼 아른거리는 엄마의 얼굴을 뒤로하고 완성한 굴소스 느타리버섯 볶음. 내 손엔 요리할 때 쓴 기다란 나무젓가락이 들려있었고, 김치를 접시에 옮겨 담을 때 묻은 양념이 그대로 묻어있었다. 엄마도 갖은양념이 묻은 나무젓가락을 쓰곤 했다. 나한테는 쇠젓가락을 줘도 엄마는 그냥 그걸로 밥을 먹었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엄마, 떠나간 친구, 멀어진 사람들. 그립다는 마음은 아니고, 그냥 횡단보도 하나를 두고 이제 막 돌아선 사람의 어깨를 볼 때처럼 측은하고 씁쓸한 마음에 가깝다. 자취를 하면서부터 이 마음이 자주 감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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