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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Mar 31. 2022

자가격리하면서 느낀 점

나쁘지 않은데?

코로나 확진을 받고 월요일부터 자가격리 중이다. 팬데믹 초기 상황이었다면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을 것 같은데 지금은 여기저기 다 걸리니까 꽤나 무덤덤하다. 오히려 예전에 독감 걸렸을 때보다 덜 아파서 아주 빠르게 호전 중이다.


자가격리하면서 느낀 점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서울의 원룸을 벗어나길 잘했다. 2년 전엔 9개월 정도 강서구의 한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관리비 포함 50이 안 된다는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 만족스러웠고, 무엇보다 창문 2개나 양옆으로 나 있어서 환기도 잘 되고 조망도 좋았다. 동향이라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뜰 수 있었고 아쉬울 것이 딱히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포의 한 행복주택에 '덜컥' 붙어버려 다시금 경기도걸이 되어버렸다. 복도식 아파트에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봤을 익숙한 임대아파트 구조에 살고 있다. 실 평수 약 11평 정도여서 '혼자 살기엔 충분하지' 싶었지만 사람이 간사한 게 살다 보니 이것도 조금 부족한데? 느끼던 찰나였다.


그런데 지금 자가격리를 며칠 째 하면서 '이만한 게 어디냐'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든다. 고개를 돌려도 아직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공간이 있고 잠자고 씻고 요리하고 물건을 놓을 공간이 각각 정해져 있다는 게, 모든 삶의 기능이 덩어리 진 채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위안이 된다.

 

그리고 나보다 상황이 좋지 못한 이 땅에 있는 수많은 격리자들을 상상해봤다. 이렇게 특수한 상황, 그러니까 아플 때마저도 온전한 쉼의 공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에 대해 되짚어 생각해본다.


두 번째, 나를 돌아보게 된다. 진공상태 실험실에 놓인 것 같은 갑작스러운 시간이 생겼을 때 나는 어떻게 하더라. 어릴 때 겨울방학 한 다음날 어벙벙한 채로 집 안을 들쑤시고 다니던 때가 생각난다. 그땐 엄마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쫑알댈 수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다. <파친코>를 보고 자이니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넷플릭스의 <그들만의 사랑 태리와 팻의 65년> 다큐를 보고 사랑의 형태와 농도를 생각해본다. 심지어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보면서 내가 이렇게 멍하게 창밖을 바라본 게 언제더라 생각해본다. 


그동안 내 시간은 나도 모르게 흘러갔고 난 꽤나 많은 걸 그렇게 흘려보냈구나.


세 번째, 의외로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는다. 난 우울하거나 혹은 그냥 집에 혼자 있을 때도 밥을 잘 챙겨 먹지 않는 편이다. 귀찮아서 배달도 잘 안 시켜먹고 그냥 냉동고에 남은 떡구이와 닭 큐브를 구워 먹는 정도다. 브이로그를 찍는다면 떡구이 PPL인가?라고 느낄 정도다. 


근데 일주일 동안 갇혀있게 되니 조금 설레서 평소 같았으면 안 해 먹었을 새우 봉골레 파스타와 춘천 닭갈비 키트를 사고 주변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혼자 사니까 걱정된다며 이것저것 선물도 보내주는 바람에 졸지에 먹을 게 넘치는 격리자가 됐다. 음, 자가격리하면서 가장 좋은 점이군.


그리고 산책을 못 나가니 집에서라도 움직여야겠단 생각에 일단 요가매트도 샀다. 맞다. 사실 이건 핑계고 그냥 돈을 쓰고 싶었다. 청소도 야무지게 하고 설거지도 끼니때마다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몸을 부지런히 쓰고 있다. 나 의외로 스스로를 잘 챙기는 인간이네?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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