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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Apr 26. 2017

사람, 결국 사람의 이야기

영화 '자객 섭은낭' 리뷰

 무협. 무협에서 협(俠)은 ‘호방하고 의협심이 있다’라는 뜻과 함께 ‘제멋대로 굴다’라는 부차적인 의미도 숨겨져 있다. 여기 후자에 걸맞는 자객이 있다. 무술 실력과 인간애까지 두루 갖추어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는 자객, 바로 섭은낭이다.     


 가신공주의 쌍둥이인 가성공주의 가르침 밑에서 수련을 마친 섭은낭은 스승의 명령을 받들어 자객으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러나 표적의 아들이 너무 귀여워 차마 죽이지 못하고 돌아온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위박’의 주공, 전계안 암살 지령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어릴 적 같이 지내던 사촌이자 섭은낭이 사랑했던 사람이다. 섭은낭은 수차례 그를 위협하면서도 끝내 죽이지 않고 스승에게 인사를 고한 뒤 마경소년과 함께 신라로 떠난다.      

 섭은낭(聶隱娘)의 ‘섭’은 귀 이(耳)자 세 개가 모인 글자로 속삭인다는 뜻, 즉 ‘잘 듣는다’는 의미이고 ‘은(隱)’은 숨어있다는 뜻이다. 이를 조합하면 ‘잘 듣는 은둔자’이다. 더 깊게 얘기하자면 침묵을 일관하며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따르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를 독살하고 형제를 죽인 자이니 죽여라’라는 대명제 같은 스승의 명령을 듣고서도 섭은낭은 표적의 단란한 가족들 모습에 암살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와 비슷하게 전계안을 암살하라는 말 역시 끝내 듣지 않고 자기 나름의 변호를 하며 결국에는 가성공주의 곁을 떠난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의 목소리가 아닌 자신만의 신념을 따르는 것이다. 그 신념은 가신공주에 대한 연민과 전계안을 향한 연모로부터 태동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섭은낭은 자객이라는 이름을 내걸고서 살인이라는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한다. 보통 자객이라 함은 암살지령을 받으면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듣고 행동하는데, 이것은 기존의 굳건하던 무협영화의 자객 이미지 자체에 대한 도전이다. 그를 고민하는 사람으로 드러냄으로써 화려한 무술실력이 아닌, 그의 인간적인 측면을 새롭게 파고드는 것이다. 살인을 주저하는 그녀의 행동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애란 무엇인지를 곱씹게 만든다. 


 섭은낭은 단검을 사용한다. 왜 장검이 아닌 단검일까. 그것을 사용하면 표적의 눈빛과 숨결, 감정 등을 더욱 잘 읽어낼 수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 가장 적합한 무기이다. 이러한 사소한 장치들은 ‘인륜의 정’을 더욱 부각시키고 그것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한 인간의 따듯한 고집을 보여준다. ‘자객 섭은낭’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죽일 만한 이유는 없다’라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말처럼 인간을 마땅히 벌해야 할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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