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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May 09. 2017

타자화의 지독한 현실

영화 '증오' 리뷰

 파리 교외 빈곤지역에서 유혈 시위가 벌어졌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 중에 폭력적인 경찰에 의해 10대 소년, 압델 이샤가 죽었다. 이로 인해 유대인 빈츠, 흑인 위베르, 아랍인 세이드는 주류 사회로부터 비롯된 각종 차별과 폭력에 그들만의 방식으로 맞서기 시작한다. 압델 이샤가 죽을 경우 경찰을 죽일 거라는 빈츠의 공격적인 말에 위베르는 염려어린 질책을 한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강경한 경찰의 모습에 위베르 역시 변하기 시작한다. 이후 몸싸움을 벌이던 빈츠가 경찰의 실수로 총에 맞자, 이에 위베르는 경찰에게 총을 겨눈다. 곧 이어 한 발의 총성이 들린다.   

 방리유(banlieu). 방리유라고 불리는 이곳은 프랑스의 교외지역에 북아프리카계, 아랍계 이민자 집단이 모여 살아가는 게토이다. 2005년 10월, 이곳에서 이주민 청소년들이 주도한 소요가 발생했는데 이는 1980년대 초에 최초로 일어난 이래로 계속되어 온 인종, 계층 간의 문제가 혼재된 중대한 사건이다. 


 영화의 척추를 형성하는 이분법적인 도식이 있다. 경찰 대 방리유 청소년들, 도시 대 슬럼이 그것이다. 언론 역시 정부와 경찰의 편에 서서 끊임없이 방리유 청소년들을 일종의 ‘공포의 대상’, ‘치안문제의 주범’이라는 이미지를 찍어낸다. 화면에는 폭력적인 경찰에 대항하는 청소년, 비루한 슬럼과 반대로 화려한 도시가 비춰진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세 비행소년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강제수용소를 연상시키는, 도시로부터 고립되고 낙후된 주택밀집지역이다. 그들이 파리로 기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도 역시 주류 사회로부터 배척되어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빈츠와 위베르, 세이드는 도시와 슬럼 그 어디를 가더라도 미행을 당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경찰에 ‘쉽고 과격하게’ 붙잡힌다. 이는 프랑스 사회 내 이민자 청소년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낙인처럼 찍혀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주인공보다도 위베르의 태도 변화가 인상적이다. 초반의 위베르는 빈츠와 경찰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공권력을 남용하며 인권을 유린하는 경찰의 폭력을 직접 겪고 난 뒤, 주류사회에 대한 짙은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결국에 그는 빈츠를 죽인 경찰에 망설임 없이 총구를 겨눈다. 위베르가 쏘았는지, 경찰이 쏘았는지 혹은 둘 다 쏘았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쪽에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억압기제에 대한 증오심이, 다른 한 쪽에서는 이민자들 존재 자체에 대한 증오심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증오>는 프랑스 주류사회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국가이념 하에서 이민자들, 즉 ‘타자’들을 어떻게 복속시키는지 절실히 보여준다. 배제와 포섭의 논리를 바탕으로 비주류와 주류 사이에 바리케이트를 설치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머무르게는 해주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아니 더 정확하게는 ‘어떻게 버틸 것인가’는 전적으로 이민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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