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어머니 그레텔' 리뷰
가끔 영어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에 있어서 의문이 생길 때가 종종 있다. 이를 테면, 위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포함된다. 어째서 'Forget Me Not'이 '나의 어머니 그레텔'로 바뀌었을까. 어쩐지 나에게는 이것이 '나를 잊어도 좋으니 나의 어머니 그레텔로 영원히 남아주길 바란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73세 전후의 나이로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그레텔. 그녀는 급진적 사회주의 모임에 참여하거나 제3국의 독립을 위해 목소리를 내면서 에너지 넘치는 젊은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말테라는 남자와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관은 독특하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없지만 결혼 한 이상 이혼은 하면 안된다' 이다. 이러한 개방적인 결혼관을 가지고 황혼녘까지 그 사랑같은 우정, 우정같은 사랑을 유지해왔다. 어찌보면,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다가도 그들이 투닥투닥 하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귀여워보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평범한듯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당신들 앞에 닥친 알츠하이머라는 병. 그 병은 강단있고 굳세던 그레텔마저도 나약하게 했다. 그레텔은 세상 밖으로 태어나기 전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하나씩 잊어버린다. 가족들의 애정 어린 눈빛과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경과는 악화되었고 결국 가족들은 요양원에서의 치료를 신청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들은 그레텔이 전문적인 보살핌보다는 따뜻한 보살핌을 받기를 원했고, 그레텔은 2012년 어느 날, 그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 있었다.
감독이자 그레텔의 아들, 다비드는 어머니의 투병생활을 마치 캔버스에 황혼녘을 그리듯 투박하지만 아름답게 그려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짙은 슬픔은 덜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짙은 감동이 있다. 가족들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따뜻하고 잔잔한 미소를 띤 채 그레텔과 그저 산책을 할 뿐이다. 정말 소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을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으로 그려냈다. 다비드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의미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시청자들 역시 그 감정을 느끼기를 원했을 것이다.
허나, 내가 느낀 최후의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우리 엄마가 떠오른다. 때로는 강단있는 모습으로, 때로는 그저 푸근한 모습으로 나를 지금까지 꽃피워왔다. 하지만, 나를 피우느라 엄마는 촉촉한 토양의 모습으로 남겨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의 미래 혹은 나의 미래면 어쩌나' 하는 우려섞인 마음은 머지않아 지금껏 나의 태도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힘든 상황일수록 더욱 가족들에게 예민해지는 나를 돌아본다. 힘든 상황이지만 끝까지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그레텔을 감싸안는 말테와 다비드에게서 나의 미래를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