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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May 15. 2017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영화 '카트' 리뷰

 ‘고객은 왕이다, 회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라는 주문과도 같은 구호를 외치는 ‘더 마트’의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 선희와 혜미, 미진은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 입 뻥긋 하지 못하고 여느 때처럼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로부터 문자메시지를 통해 부당 해고를 당한다. 이에 캐셔와 청소부 가릴 것 없이 계약직 직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투쟁하기 시작하고 곧이어 정규직과도 연대를 한다. 그러나 그들이 투쟁하면 할수록 궁지로 몰아가는 회사와 언론, 무장경찰에 의해 노조 안에서도 분열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의 부조리 앞에서도, ‘더 마트’ 직원들은 카트를 밀고 나아간다.      

 회사-노조,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칼로 자른 듯 반듯하기까지 한 이 이분법적인 구도는 <카트>를 관통한다. 한국사회의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더 마트’의 남성 임원진들과 정규직 직원들, 그 뒤에는 그들의 권력을 옹호하고 수비하는 경찰과 언론이 있다. 반면 그 건너편에는 비루한 모습의 비정규직 여성 직원들만 존재할 뿐이다. 열악한 근무환경의 개선 요구와 부당해고에 대한 저항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시작했으나 협상마저도 거부하는 사측에 노조는 ‘더 마트’ 불법점거를 감행한다. 이에 언론은 ‘불법 점거’하는 몰지각한 노조라는 프레임을 덮어씌우고 재생산한다.      


 <카트>의 뿌리가 노사(계급)갈등이었다면, 사방으로 뻗은 잔가지는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갈등이다. 그 중에서도 ‘정규직의 태세 전환’은 가지에 매달린 썩은 열매이다. 비정규직이 노조를 결성하여 투쟁할 때 정규직들은 그 상황을 수수방관한다. 그러나 회사의 본래 계획이 현재 비정규직은 다른 용역업체 직원들로, 정규직들은 계약직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고 그때서야 비정규직 노조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노조위원장을 맡은 강동준의 말마따나 ‘내 일이니까’ 투쟁 현장에 뛰어드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 마트’는 이에 질세라 노조를 상대로 딜을 시도한다. 그들의 패는 노조의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는 것. 탐스러운 그들의 패에 노조는 부지불식간에 분열되기 시작한다.      

 ‘더 마트’의 여성노동자들은 이중구속의 상태에 놓여있다. 노조 활동을 하면서도 집안일을 신경써야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용역업체의 폭력적인 철거에 의해 혼수상태에 빠진 혜미의 아들과 악덕사장에게 부당한 일을 겪는 선희의 아들이 이중구속의 결과이다. 이들의 처연한 상황은 혜미와 선희로부터 죄책감을 갖게 한다. 이것은 여성노동자로 하여금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는 것이 가족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켜 다시 회사에 복종하게 하는 잔혹한 구조이다.      


 <카트>는 노사갈등의 뻔한 서사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보이는 그대로 자본주의 사회의 폐부를 치열하게 파헤쳤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풀리지 않는 한국사회의 모순을 공론화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까지 엿보인다. <카트>에는 영화<베테랑>처럼 부정한 기득권층을 벌하는 그런 통쾌함은 없다. 사람으로 살고 싶은 이들의 처연한 돌진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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