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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Jun 20. 2017

날개를 잃어버린 이데아

영화 '캡틴 판타스틱' 리뷰

 플라톤적 이상 국가를 동경한 벤과 그의 아내 레슬리는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의 삶의 방식을 무시한 채 그들만의 국가를 건립하고, 그 속에서 보데반, 키엘러, 베스퍼, 렐리안, 사자, 나이라는 6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오래지 않아 레슬리가 정신질환으로 자살을 하자, 레슬리의 아버지 잭은 벤의 영향 때문이라고 몰아세우고 장례식에 오지 못하도록 엄포를 놓는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는 벤 가족은 그녀의 유언을, 불교의 방식으로 화장을 하고 공공장소 변기에 내려달라는, 수행하기 위해 모험을 시작한다. 호기롭게 시작한 미션은 벤의 여동생 하퍼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치관의 차이 탓에 끊임없이 충돌하고 미끄러진다. 평소에 벤의 양육방식과 삶의 철학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렐리안은 벤과의 이별을 선언하고, 설상가상으로 베스퍼가 지붕에서 떨어지게 되면서 벤은 자신의 고집을 꺾고 홀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6명의 아이들은 다시 벤을 찾아와 레슬리의 유언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고즈넉한 시골에 터를 잡고 미국 사회와 타협하며 살아간다.      


 ‘과연 이상적인 국가란 존재하는가, 아니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이 <캡틴 판타스틱>을 보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던 의문이다. 벤은 플라톤과 노엄 촘스키의 사상을 동경하고 이 사상적 토대 위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들 스스로 부모이자 선생이며, 국가 그 자체가 되어 아이들을 ‘철인’으로 기르기 위해 전인교육을 실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용적인 학문만 강조하는 것과 달리 지, 덕, 체 다방면에서의 능력을 고양시키기 위한 훈련을 매일 수행한다. 체계적이지도 않고 망상에 불과한 세상을 영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벤의 양육방식에 하퍼는 염려어린 질책을 한다. 그러나 벤은 이에 항변하듯이 어린 사자를 불러 그의 해석이 깃든 ‘권리장전’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게 하고, 사자는 자신만의 언어로 유려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처럼 단단해보이던 벤의 세계도 점점 그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자신만의 정의 위에 국가를 건립하고자 하지만 그 삶을 영위하기까지에는 현실적으로 수많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이를 테면,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것에서부터 가로막힌다거나 의료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미국 자본주의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벤은 직계가족과의 연을 완전히 끊을 수도 없다. 이것은 곧 사상의 충돌로 이어지고, 벤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두 사회의 간극과 자신의 세계의 한계, 즉 아이들을 자신의 세계에 가두기에는 그 세계가 너무나 열악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벤에게 공고한 삶의 철학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안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와 타협점을 찾아 시골부지에 정착하며 살고 제도권교육에 아이들을 맡기는 것이다. 합리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이데아를 향해 날아오르고자 했지만 결국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형상이 잔상처럼 눈언저리에 아른거리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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