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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Aug 05. 2017

죽어도 살아내야만 하는 삶의 임무

영화 '덩케르크'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은 독일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의해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되어 철수를 계획한다. 남은 병력은 40만 명. 죽어도 살아서 돌아가야만 하는 그들에게, 독일군은 창공에서 폭격을 가하기 시작하고 영국 공군은 그러한 독일군의 공격을 제지해야하는 업무를 수행해야한다.


 토미, 피터, 도슨, 조지, 알렉스, 콜린스, 깁슨,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 바다와 육지, 하늘의 경계는 불분명하고 불안정하게 이어져있고,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전쟁이라는 하나의 비극에 묶여있다. 소년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삶의 층위들은 살아내야만 하는 군인들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덩케르크>의 시각은 좀 다르다. ‘철수’, 극 중 알렉스의 ‘고향으로 돌아가도 패배한 우리들을 사람들은 비난할거야’ 말처럼, 과거에 승리하지 못한 채 살아 돌아오는 것은 불명예라는 딱지를 입곤 했다. 이를 위로하듯 <덩케르크>는 ‘명예롭게 전장에서 죽지 못하고’ 살아 돌아온 이들에 대한 제(祭)를 하는 듯하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의 군인들은 각자 치열하게 살아낸다. 적군을 공격하거나 죽어가는 동지를 살리기 위해 달려가거나, 아직 지원군 배에 타지 못한 이들을 위해 끝까지 남거나. 하지만 늘 그렇듯, 그 안에서도 살기 위해 타인을 방어막으로 삼고 같은 국가나 군대라는 이유로 편을 가르는 등 인간의 본능에 기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비난의 대상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머리 위에 언제 포탄이 떨어질지 모르고 옆에 서 있는 동지 혹은 본인의 사지가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서, 칼로 자르듯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네이버 등장인물 소개 면에 ‘떨고 있는 병사’라고 나오는 인물이 이를 잘 대변한다. 추락한 비행기에서 간신히 구조되어 목숨을 부지했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를 구조해 준 도슨은 당국의 지원요청에 덩케르크 해변으로 지원을 나가야하는 임무를 저버릴 수 없다. ‘떨고 있는 병사’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분노해 얼떨결에 어린 조지를 넘어뜨리게 되고, 조지는 결국 죽게 된다. 하지만 그 병사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계속해서 조지의 안부를 걱정스레 묻곤 한다. 그저 삶의 모순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 모든 삶의 양태가 일분일초마다 벌어지는 곳이 바로 전쟁터다. 


 통쾌한 액션, 위대한 영웅 서사는 없다. 처연하면서도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는 인간들만이 있을 뿐이다.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인간들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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