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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Sep 19. 2017

미끄러지는 감정, 어긋나는 관계

영화 '소년, 소녀를 만나다' 리뷰

 알렉스는 자신의 연인 플로랑스가 친구 또마와도 연인사이임을 알게 된다. 이에 알렉스는 또마의 목을 졸라 살해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미레이유 역시 연인 베르나르가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 알렉스는 베르나르와 미레이유의 통화를 엿 듣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미레이유를 자꾸 떠올리게 된다. 알렉스는 미레이유가 참석한 파티에 찾아가고, 둘은 오랫동안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 어떤 운명적인 느낌을 받은 알렉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미레이유의 집에 찾아가지만, 미레이유는 베르나르에 대한 사랑을 지우지 못해 자살을 시도한다.       


 두 사람이 만나 연인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두 사람 모두가 서로에게 전적으로 빠져들어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연인간의 관계에서도 사랑의 무게는 다르고, 각자가 바라보는 방향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플로랑스는 알렉스 이외에도 다른 연인을 두었고, 베르나르 역시 미레이유에게 권태를 느낀다. 이 감정의 ‘미끄러짐’은 진정한 교감의 불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플로랑스를 향한 애도를 채 마치지 못한 알렉스에게 찾아온 미레이유는 또 다른 관계의 가능성이다. 플로랑스에 대한 알렉스의 사랑은 어느 새 수습되어 미레이유에게 향하고 이내 그를 욕망하기 시작한다. 반면, 미레이유는 현재 베르나르에게 완전히 함몰되어 있어 알렉스의 사랑에 화답하지 못한다. 파티장에서 맞부딪쳐 깨져버린 유리잔처럼 알렉스의 감정은 미레이유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로 고이게 된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마지막 장면은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미레이유가 날카로운 가위로 자살을 시도한 뒤 알렉스와 함께 쓰러지는 장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살을 시도하려고 하는 순간 알렉스가 들어오는데, 이를 베르나르가 들어온 줄 알고 착각한 미레이유가 베르나르의 이름을 부르자 이에 알렉스는 가위를 잡고 미레이유를 살해하는 장면. 전자는 알렉스의 망상이고 후자는 현실이다. 알렉스는 말한다. ‘사람은 외로울 때 강박적이게 되지. 욕망은 극복하기 힘들고 요즘은 돈도 많이 들어…난 꿈을 이루려하지 않고 꿈만 꿔왔어.’라고. 이를 통해 미루어보았을 때 마지막 장면은 미레이유에 대한 욕망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충족되지 못한 사랑이 강박으로 변해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과연 누군가와의 교감은 진정으로 가능한가.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고 끊으며 살아간다. 태어난 순간부터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 놓이게 되고 그 범위는 점차 이내 친구, 연인, 동료들로 확장된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이들과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더라도 문득 인간 존재의 허무함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이를 견디지 못하는 이들은 어느 한 가지에 집착하게 된다. 그것만이 생生의 허무를 견디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그리 적절치 못하기 때문에 결국 감정은 어긋나고 관계는 흩어진다. 생의 허무에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는 외로움, 그 허무를 받아들여 견딜 줄 아는 것이 고독이다. ‘C’est La Vie’ 극 중 고독함을 아는 우주 조종사였던 제리 브리지맨의 말처럼,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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