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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Nov 01. 2017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작가 효섭은 무명작가라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그의 제자 민재는 효섭에 대한 동경을 포함한 사랑을 느끼지만, 효섭은 자신의 부족함마저도 감싸주는 유부녀 보경을 열렬히 사랑한다. 보경은 죽은 어린 아들로 인해 남편 동우와 관계가 틀어지고 난 뒤 효섭과의 관계를 맺고, 동우는 점점 멀어져가는 보경에 외로움을 느낀다. 반면, 민수는 같이 일하는 민재를 짝사랑한다. 효섭은 자꾸 찾아오는 민재가 부담스러워 밀치게 되고, 그를 본 민수는 민재 곁을 지켜준다. 그러던 중 보경은 연락이 닿질 않는 효섭의 집에 찾아가지만 답이 없는 것을 보고 이내 되돌아간다. 그러나 효섭의 집 안에는 다름 아닌, 피칠갑을 한 민수와 싸늘하게 주검이 된 효섭과 민재가 누워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결핍이 있는 존재다. 효섭은 무명작가라는 데에서 비롯된 자격지심, 보경은 아들의 부재, 동우는 보경으로부터 충족되지 않는 사랑 등 결핍의 형상도 다양하다. 특히, 효섭이 동기와 식당 종업원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는 장면, 보경이 사진관에 걸려있는 자신의 가족사진을 산산조각 내는 장면, 그리고 동우가 다방의 종업원과 관계를 맺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람은 도자기의 매끄러운 표면처럼 완전하고 온전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크기와 상관없이 온갖 모순과 결함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인간의 모순은 한 인간을 넘어 촘촘한 인간관계까지 깊게 파고들어 또 다른 삶의 모순을 낳는다. 


 효섭과 보경, 민재, 동우, 민수는 자신의 결점을 지닌 채 서로 부딪치고 깨지며 때로는 부둥켜안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보통의 존재들이 만나 충돌하는 과정에서 감정은 끊임없이 미끄러지게 된다. 이 감정의 균열에서 오는 소통의 불가능성은 폭력적인 양태로도 나타나는데, 동우가 강제로 보경과 관계를 맺는 장면과 민수가 민재와 효섭을 살해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결벽증이 있는 동우는 다방의 종업원과 적절하지 않는 관계를 맺었다는 것에 대해 자괴감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 성행위는 이 자괴감을 덜어내기 위한 일종의 회개의 행위이자 보경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따라서 ‘순수’하다고 여긴 보경의 몸에 자신의 ‘더럽혀진’ 몸을 맞대고 싶었으리라. 한편, 민수는 효섭과 민재를 죽이기 전, 효섭에게 실연당한 민재에게 자신이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은 관계를 갖게 된다. 민재는 민수에게 ‘내 몸 가지니까 좋니?’라고 묻는다. 이 물음은 인간의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하는 욕망’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손에 가득 움켜쥐려고 할수록 고스란히 손가락 사이로 새나가는 모래와도 같은 채워지지 않는 근본적인 결핍에 대한 질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존재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고 갈등한다. 그 모든 노력이 헛되고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그 우매한 행위를 반복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모순 속에서 갈등하고 욕망하는 인간을 그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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