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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May 04. 2018

반려견과 산책하면서 드는 생각들

*의식의 흐름에 주의해주세요.


반려견 구름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어느새 5개월이 지났다. 구름이와 함께 걷기 전에는 절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잠깐 정리해보고 싶어서 늦은 밤 글을 쓴다.


사실 산책이라고 해서 별 다른 건 없다. 단순히 걷다가 힘들면 의자에 앉았다가 잠깐 쉬고, 다시 일어나서 걷는 행위의 반복이다. 그러나 이 시간이 몇 개월동안 축적이 되다보니 그 시간만큼이나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쩐지 5월인데도 불구하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가는 듯한 선선하면서도 약간은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햇살은 투명해서 마냥 걷고만 싶은 날이었다. 그래서 아침 9시에 구름이와 함께 동네 공원을 한 시간 동안 걸었다.

누가 저렇게도 반듯이 다듬어놨는지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쳐가는 길이지만 구름이와 산책을 하다보면 잠깐 이렇게 멈춰서서 정갈하게 정돈된 나무의 결을 바라보거나 먼지 없이 화창한 하늘이 마냥 반가워 멍하니 올려다보곤 한다.


그래서 저녁 6시쯤에 구름이를 데리고 한번 더 밖을 나왔다. 사실 하루에 한번만 산책을 하는지라 오늘처럼 두 번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구름이의 모습은 오전 9시의 산책 때와 상당히 달랐다.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건 평소에는 누나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뒤를 보며 걷기 바빴던 구름이가 두번째로 나오니까 풀숲을 헤집으며 열심히도 냄새를 맡는 것이다.


어쩌면 나와 구름이는 지금까지 산책이 아니라 숙제와도 같은 걸음을 내딛었던 게 아니었을까. 견생 2회차를 사는 것처럼 여유롭게 풀에도 들어가고 신나게 코를 쓰는 구름이의 모습에 다시 한번 나를 되돌아본다.

이름도 모르지만 소박하고 예쁜 꽃

이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목련잎이 초라하게 떨어지는 때가 오면 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새는 산책길 구석에 핀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눈에 밟힐 때, 하루가 다르게 잔디와 나무가 감탄이 나올 정도로 푸르러질 때 봄을 실감한다. 녹음이 우거지는 시간 속에 느꼈던 생명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 벅차오르는 감정이다. 눈이 아플 정도로 색감이 선명한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 아프리카 초원에서 뛰어다니는 동물들을 볼 때보다 가까운 공원에서 태동하는 푸르른 것들을 볼 때 왜 더 깊게 숨을 고르게 되는지.

대학을 졸업하고 내 생각과 기대와는 전혀 다른 사회에 여러 차례 데이고, 더 이상 발을 내딛기가 점점 더 무서워지던 날들에 나는 더 구름이의 리드줄을 꽉 잡곤 했다. 한 걸음에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설움을, 한 걸음에는 언제까지나 이렇게나 무거운 존재로 살아야한다는 막막함을 가득 담아내 걷고 또 걸었다.


때로는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때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바라보는 구름이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과 작은 심장의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내 하루의 중요한 일과처럼 느껴지던 때.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건 이 작은 생명의 온기였다.


그리고 구름이를 통해 내가 사는 동네, 내가 사는 사회, 내가 지나가는 시간들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골목길에는 왜 그리도 많은 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있고, 바닥에는 깨진 유리가 왜 그리도 많으며 차들은 왜 그리도 쌩쌩 지나다니는지. 내가 산책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무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나 없이도 잘만 굴러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구름이의 발걸음에 맞춰 걷다보니 한번도 떠올려보지 않은 질문들이 내 안에서 쏟아지듯 나왔다. 대부분은 답이 없는 질문이라 생각은 금세 날아가버리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구름이 곁에서 걷다가 짧게 뱉어내는 한숨에 산책이 주는 즐거움을 오래토록 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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