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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May 26. 2018

야, 나 숏컷함

머리자르기

숏컷을 했다. 내가.


한 2-3년전부터 숏컷하고 싶다는 말을 주변에 하고 다녔다. 말만 하고 다녔지 어쩐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포털사이트에 '여자 숏컷', '숏컷 스타일링', 심지어는 '숏단발'이라는 키워드까지 쳐봤다. 나처럼 겁보가 많았는지 유튜브에 검색해봤더니 귓볼에서 턱밑까지 자로 재서 5-6cm 이상이면 숏컷이 안 어울린다는 이상한 공식까지 봤다. (물론 나도 재봤다ㅎ 근데 5-6cm 이하인 사람이 있을까 싶다)


여기저기서 해보라는 말보다는 하면 후회한다는 말이 더 많았지만, '너 애기 때 머리 완전 짧았을때도 괜찮기만 했는데 뭘! 자르고 후회해'라는 엄마의 말 한마디가 귓전에 맴돌아서 어제 잘라버렸다.


미용실 의자에 앉으니 미용사 언니가 '머리 어떻게 하시게요?'해서 '음, 숏컷이요!'라고 당차게 말했는데 '네? 숏컷이요?'라는 물음이 되돌아와서 순간 아차! 싶었다. 하지만 한번 마음먹은 거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저장해 둔 참고용 사진을 여러개 보여드렸다. 참고용 사진이 수지, 김보라, 소주연 같이 어떤 머리를 해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들이라 '손님, 이건 수진데요.'라는 말이 나올까봐 조마조마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의외로 미용사 언니는 담담하게 '그럼 바로 자를게요' 한마디를 툭 던지시곤 가위로 중학교 가정시간에 배운 '파 어슷썰기'를 시전하듯이 쓱싹 댕강- 잘라버렸다. 기르기는 오래걸려도 자르는 건 한순간이고, 모으는 건 오래걸려도 쓰는 건 한순간이라는 걸 이상한 타이밍에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한 20-30분이 흘렀을까. 거울 안쪽에는 목 주변이 휑한 여자 한 명이 앉아있었고 그 여자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후련한 미소가 얹어져있었다. 집에 와서 그제서야 친구들에게 숏컷했다고 알렸더니, 친구들은 '대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느냐'고 장난스레 물었다.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지루해서 잘랐는데.


그러나 동시에, 머리를 자르는 일은 역시 감정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무겁고 많은 감정을 이고 살았던 걸까.


그동안 내가 주저했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숏컷하는 것에 아무도 응원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지레 겁부터 먹었다. 주체적으로 살리라 다짐했는데 머리스타일 하나조차 내 의지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조금은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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