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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Jun 09. 2018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조세핀과 줄리앙의 양육권을 두고 심리에서 서로 다른 진술을 하는 줄리앙의 엄마 미리암과 아빠 앙투안. 미리암의 변호사는 별거 후에도 앙투안의 반복되는 폭력과 집착을 이유로 들며 자신만의 양육권을 주장하지만, 앙투안 측은 '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양육권은 부모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미리암에게 세뇌당한 것이다'라는 말만 늘어놓는다. 앙투안의 감쪽같은 연기에 판사는 그의 손을 들어주고, 곧 성인이 되는 조세핀과 달리, 아직 11살 미성년자의 줄리앙은 일주일에 한번씩 앙투안을 만나야 한다.


 줄리앙은 주말 아침마다 집 앞에 찾아와서 동네가 떠나가라 경적을 울리며 원치 않는 앙투안의 마중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인질처럼 앙투안의 부모님 집에 들어가 지옥같은 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앙투안의 신변에 위협이 느껴질 정도의 집착에 줄리앙은 미리암의 번호와 이사간 집 주소를 알려주지 않으려 하지만, 늘 그렇듯 어린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못해 이내 늑대같은 앙투안에게 들켜버린다. 겹겹이 쌓여온 앙투안의 분노는 이내 극에 치달아 조세핀의 생일파티가 이뤄지던 밤, 사냥용 엽총을 들고 미리암과 줄리앙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흔한 11살의 환멸섞인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연기

 이 영화는 프랑스 양육권 제도의 한계와 그 제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가정의 이야기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빠에 의해 가정 폭력이 행해지는 가정에 대한 이야기다. 그곳엔 그 무게를 오롯이 견뎌내야만 하는 아이가 있다. 극에는 유독 차 안에서 안전벨트를 매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차량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나는 생각했다. 이 영화속에서만큼은 누구를 위한 안전벨트인지 모르겠다고. 마치 프랑스 양육권 제도를 투영하는 듯 하다. 줄리앙은 아직 미성년자이기에 미리암과 앙투안 양쪽의 보호 아래에서 성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사의 판결은 차량의 경고음과 같다. 그 '덕분에' 줄리앙은 안전벨트에 꼭 매어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앙투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줄리앙에게 안전벨트는 생명벨트가 아닌, 죽음의 벨트다. 빠르게 달리는 차 안,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압박 속에 환멸을 느끼지만 마냥 뛰어내릴 수 없는 상황. 글을 써내려가면서도 가슴이 콱 막혀오는데, 11살 줄리앙의 그 작디작은 마음은 과연 어떨지. 줄리앙은 아빠 앙투안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 화산이 터지면 미리암과 조세핀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상은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앙투안에게서 죽을 둥 살 둥 도망쳐도 결국은 다시 본인의 발로 걸어서 앙투안의 차에 올라타는 것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고립되고 구속된 아이들은 상처를 치료하지도 못한 채 너무 빨리 커버린다.


 아이는 반드시 엄마, 아빠가 있어야 '바람직한'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바람직하다' 혹은 '정상적이다'라고 일컬어지는 삶의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인지, 그 안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은 과연 누가 보듬어줄 수 있는지. 귀신이나 좀비가 나오는 영화는 공포를 '소비'하는 것일 뿐, 진정한 공포가 아니다. 공포란, 바로 우리의 곁에 있으며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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