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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Jun 13. 2018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영화 '초행'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7년차 커플 수현과 지영. 그들 앞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수현의 아버지 칠순잔치가 있으니 삼척에 같이 오라는 것.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지영이 생리를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임신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된다. 삼척에 가기 전, 이들은 지영의 부모님 집들이에 초대받아 가게 된다. 그러나 새로 이사한 집이다 보니 찾아가는 길이 익숙치 않다.


 어렵게 부모님댁에 도착했지만, 오랜만에 봤는데도 불구하고, 지영의 엄마의 입에서는 고운 말이 나오지 않는다. '7년차 커플인데 결혼을 왜 하지 않느냐', '자식이라고는 너뿐인데 어디가서 내가 할 말이 없다'라는 말로 결혼을 독촉하고 은근슬쩍 수현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다. 수현은 미술학원의 강사로, 지영은 굵직하지 않은 방송국의 계약직 직원으로 일한다. 지영의 엄마의 불만은 아마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엄마의 지나친 성화에 결국 집 앞 복도에 나와 눈물을 훔치는 지영. 그 옆에서 수현은 '우리 엄마가 너도 삼척오는 걸로 알고 있대. 확정이래. 무섭지?'라는 말로 농담 섞인 위로를 던지지만, 지영은 위안은 커녕 더 큰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줄곧 아내를 말려오던 지영의 아빠마저도 놀이터 그네에 앉아 수현에게 가정사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그 시각, 지영은 줄곧 자신과 수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엄마의 눈을 말없이 노려보고 있다. 결국, 지영은 자고 가라는 아빠의 말에도, '그렇게 그냥 갈 거냐'라는 엄마의 물음에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그들만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둘은 삼척으로 떠난다. 배배 꼬인 산길을 달리고, 중간에 멈춰 말없이 산등성이를 바라보기도 하고, 주인없는 음식점 앞에서 화장실을 찾아 서성이기도 한다. 그렇게 도착한 삼척의 집은, 환대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홀대할 것까지 있나 싶을 정도로, 생기가 없다. 서로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무관심과 환멸밖에 남지 않은 수현의 부모님 앞에 수현은 고개를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영은 어떻게든 예의를 갖춰 원치 않는 '며느리' 역할을 도맡는다. 지영이의 처음 보는 행동에 수현은 화가 나 '예의 좀 차리지마. 우리가 뭐 할 수 있을 것 같애?'라는 말을 내지르지만 지영은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라는 말을 내뱉는다.

 각자가 살아온 삶을 처음으로 마주한 이들 앞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다가온 결혼은 너무도 어렵다. 상대방의 역사를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용기는 그렇게 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남들도 다 가는 길'로 여겨 그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초행길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무섭고 두렵고 낯설고 어색하다. 이 영화는 그 무게를, 그 초행길을 이야기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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