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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Jul 07. 2018

아무것도 안해서 아무것도 아닌거야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리뷰

이건 단순한 성공 서사가 아니다.
한 사람이 어떠한 생을 살아내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의 고뇌와 절망, 그리고 열망의 서사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작지만 쓸데없이 견고해보이는 방 안에 쳐박혀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딘에 빠져살면서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글만 끄적이던 스티븐 패트릭 모리세이. 무명 작가, 무명 보컬리스트로 지내는 것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기껏 용기내서 하는 일이라고는 신문 끄트머리에 달려있는 독자 기고란에 한 두줄 기고하는 일, 동네 클럽 문턱을 힘없이 넘나드는 일이다. 아버지의 등쌀에 못이겨 세무사 직원으로 일하던 와중에 그의 숨길 수 없는 열망과 천재성을 알아봐주는 이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바로 아티스트 린다와 기타리스트 빌리. 린다는 스티븐에게 다가가 '글쓰고 노래해', '세상이 어떻게 너를 기억하게 할거야?'라는 말로 진실된 희망을 심어준다. 이에 힘입은 스티븐은 세무사를 그만두고 음악과 글쓰기에 전념하기로 한다.


성공적으로 첫 무대를 마친 뒤 여지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희열과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내려온 그들에게 런던의 매니지먼트로부터 러브콜이 온다. 하지만, 이것은 빌리만을 위한 것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심에 이어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나버린 린다, 친구 안지의 죽음, 눈 뜨고 볼 수 없는 빌리의 성공까지 더해졌다. 세상은 어떻게든 그를 화나게 한다. 그럼에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첫사랑 같은 음악에 대한 열망은 기타리스트 조니 마와 함께 다시금 그를 찾아온다.

빛과 물은 어떻게든 밖으로 새어나온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여기에 '열망'까지 덧대고 싶다(추상적이고 가끔은 그 무게가 감당이 되지 않는 '꿈'이라는 단어보다 살결에 닿을 듯이 실체적이고 감각적인 '열망'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스티븐의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글쓰고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억누를래야 억누를 수 없는 것이고, 물로 가득찬 풍선에 누군가 바늘로 콕 찌르기라도 하면 겉잡을 수 없이 터져나와 그 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루지 못한 열망의 무게는 퍽 무거워서 감당하기 쉽지 않고 갈수록 그 무게는 더해져만 간다. 그래서일까. 스티븐은 이를 알고 있다는 듯 무명작가로 지내는 것에 싫증을 느끼면서도 막상 세상에 자신을 내보이는 것에 대해 지레 겁을 먹고 이리저리 피해다니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스티븐은 계속 했다. 글을 쓰고 노래하는 일을 계속 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그 고된 여정을 오롯이 견뎌낸 사람들은 마침내 달큰한 열매를 맛보게 된다. 이것은 바로, 영화의 모티브이자 '비틀즈 이래 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밴드'라는 BBC의 극찬을 받은 '더 스미스'의 이야기다. 지금, 'Heavens knows I'm miserable now'를 들어보자. 음울하면서도 유쾌한 가사와 리듬에는 모리세이의 젊은 날의 고뇌가 온전히 녹아있다.

젊은 날의 치기와 패기, 오래지 않아 찾아오는 자괴감과 열등감까지. 무엇을 진정으로 욕망한다는 것의 무게가 이리도 무겁다는 것을 그동안 왜 아무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았는지. 그렇게 몇 년 동안 아니, 어쩌면 평생을 욕망의 봇짐을 짊어맨 뒤 맷집을 길러내야 꿈의 끄트머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모리세이를 통해 느끼게 됐다. 이 영화가 '여전히 꿈이라는 아득하기만 한 것'을 꿈꾸는 수많은 청춘들에게 가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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