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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Jul 23. 2018

어쩌다 가족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 '어느 가족'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전남편의 유족 연금으로 여생을 살아가는 하츠에 할머니. 그 밑에는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오사무와 세탁공장 노동자로 사는 노부요,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아키, 오사무에게 배운 도둑질을 일삼는 어린 쇼타까지, 바위 틈 따개비처럼 붙어사는 '평범할 수 없는' 가족이 있다. 동네 마트에서 오사무와 쇼타는 하루 일과인 도둑질을 마치고 고로케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도둑고양이처럼 아파트 복도에서 숨죽여 바스락거리는 유리를 마주친다. 오사무는 고로케를 건넨 자신의 손을 살포시 잡던 어린 몸에 퍼렇게 멍이 든 모습을 보고집으로 '유괴한다'. 새로운 식구가 썩 달갑지 않은 노부요는 저녁만 먹이고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하지만, 유리의 집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이내 발걸음을 멈춘다. 그렇게 어쩌다 그들은 6명의 식구가 되었다.

 그러나 머지 않아 유리의 실종 뉴스가 보도되고, 노부요가 유리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그의 동료는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그 비밀을 지켜주는 댓가로 노부요의 돈줄을 끊는다. 설상가상으로, 노부요와 오사무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하츠에 할머니의 장례를 치를 수 없어 앞마당에 안치하고, 쇼타는 물건을 훔치는 유리 대신에 경찰 손에 잡힌다. 결국 그렇게 그들은 산산조각나 길바닥에 흩어진다.  

 위에서 '평범할 수 없는 가족'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들은 평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평범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가족 구성원들은 혈연으로 묶인 가족들에게 버려지거나 스스로 떠나온 사람들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가족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다보니 사회 중심부에서도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소외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언가를 훔치고 주워오는 일'로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체득한다.


 그러나 이 방식은 그들에게 독이 되어 돌아온다. 오사무와 노부요가 쇼타와 유리를 '주워온' 일도, 슈퍼에서 생필품을 훔치는 일도, 그 이유가 어찌되었건 간에,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회는 뒤죽박죽 엉켜있는 이들의 뒷이야기는 언급조차 않고, 그저 '기이하고 엽기적인 가족'의 이미지로 프레임을 씌우고 소비하기에 바쁘다. 그 쥐덫과도 같은 프레임에 이 가족은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부서져버렸다. '가짜' 가족에게서 멀어져 다시 '진짜' 가족에게 돌아가게 된 유리의 몸에는 이내 다시 퍼런 멍이 드리울테다.

 이들은 서로를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부른다. 쇼타, 유리, 노부요 이런 식으로. 하지만 나는 이 모습이 어색하기보다 오히려 상처 많은 똑같은 인간들이 서로를 부둥켜 안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호칭 뒤에 숨은, 사회가 은연 중에 정해놓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에 우리는 꽤나 충실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다. 노부요의 말마따나 혈연으로 묶이지 않아 기대할 것도 실망할 것도 없을 때 진정한 유대감이 생길 수 있다. 섣불리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정의를 내리려 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그 자체가 좋은, '어느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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