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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Dec 13. 2018

비루하고 데데한 것들

황정은 작가 저서 '아무도 아닌' 리뷰

 ‘아무도 아닌’은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읽었다. 그리고 졸업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다시 손에 붙들었다. 읽으면 한동안 곱씹고 싶지 않아도 곱씹게 될 책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붙들었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른데, 아마도 그 사이에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을 관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서 연유하는 건지 모를 먹먹함 속에 파묻혀 읽었던 문장들이 어느새 가슴 깊숙한 곳에 들어와 슬픔으로 자리했다. ‘아무도 아닌’의 그 아무도 아닌 사람들 속에서 내 얼굴을 마주했고, 실리, 디디와 도도 등 이름 같지 않은 이름들이 간신히 엮어가는 삶을 담은 이야기 속에 내 슬픔 한 조각을 발견하고 말았다.


 실종사건의 마지막 목격자라는 이유로 이름 모를 죄책감을 느끼는 서점 직원부터 꽤나 소중했던 연인과의 이별, 아득한 기억의 끝자락을 잡으며 어쩌면 마지막 숨이 될지도 모르는 숨을 뱉어내는 치매 노인, 아들을 잃고 영원한 상실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부모, 환멸과 공포를 오가는 층간 소음 문제, 왜 웃는지 모르지만 어쩐지 오늘도 웃고 있는 침구류 판매직원까지. 다양한 꼴을 하고 있는 데데한 삶의 층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퍽 다정하다. 어쩌면 너의, 그리고 나의 이야기일 것만 같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말았다 이윽고 다시 붉어지고 마는 이야기들이다.


 한 마디로, ‘아무도 아닌’은 사물이 됐건 사람이 됐건 마음이 됐건 그 무언가를 이미 상실한 사람들 혹은 곧 상실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어떤 것이 홀연히 내 몸 밖으로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 선연한 빛을 띤 커터칼로 아이보리 캔버스를 부-욱 찢어 갈겨 벌어질 대로 벌어진 틈 사이로 진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느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철저한 아픔에 감응해준다.


입을 떼기도 발을 떼기도 어려운 시간 속에 누군가의 언어를 빌려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그것은 ‘아무도 아닌’이라는 이름의 책일 것이다.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마음 돌보기가 영 쉽지 않은 요즘,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찰나 붙잡아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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