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버 Jun 28. 2017

쓸 만한 인간__

배우 박정민 산문집

묵직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런 위로


 뜻하지 않게 모바일 문화상품권이 생겼다. 평소라면 도서관에서 읽고 말지 내 돈 주고는 책을 잘 안 사는데, 상품권이 오프라인 전용인데다 서점에서 많이 쓸 수 있는 까닭에 동네에 생긴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어섰다. 집에 있는 책은 잘 들여다보지도 않으면서 도서관이나 서점만 가서 책 냄새만 맡아도 10권은 가뿐하게 읽어내려갈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때는 바야흐로 고등학교 2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배우 이제훈에게 빠져 그의 필모그래피를 다 뒤져가면서 찾은 영화 <파수꾼>을 본 적이 있다. 덕질을 하려다가 우연치않게 박정민에게 입덕했다. 그가 툭툭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가 글을 쓰고 책을 냈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 듣고 국내 에세이 코너를 돌고 돌다가 <쓸 만한 인간>이라는 산문집을 집어들었다. 문화상품권으로 결제하고 설레는 맘을 부둥켜 안고 총총 집으로 달려왔다.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읽기 쉽고 읽기 좋은 문체 덕분에 담백하고 유쾌하게 잘도 읽어내려갔다. 대개의 경우, '배우'하면 떠오르는 몇가지 선입견이 있지 않나싶다. 특별한 열정과 재능이 있고 자신감 넘치고 통장의 돈도 넘치는, 뭐 그런 것들. 그러나 이 산문집을 쓴 박정민은 배우 박정민이 아닌 인간 박정민의 언어로, 때로는 아무말대잔치 때로는 진지한 어른아이의 말투로, 그렇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온다.


 나는 아직 20대 초반이라 여러가지 흔들리고 갈피 못 잡는 일들이 많다. 지금 나와 같은 시간을 건너온 30대의 박정민은 나같은 사람들에게 '고맙습니다. 거기서 뭐 하세요. 뭘 하시든 고맙습니다.' 혹은 '당신 지금 아주 잘하고 계신 거다'라는 심심한 위로를 던진다. 심심하지만 가볍지 않은 그런 위로다. 근데 이 위로가 이상하게도 많은 위로가 된다. 책의 끝자락에 '물론 세상에 내놓을 기회가 다시는 없을 수도 있겠다. 때문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라고 했는데, 계속해서 책을 내주셨으면 좋겠다. 계속 실없는 농담 속의 실다운 진심을 말해주셨으면 참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속해보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